유빈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다. 친구들을 좋아하는 유빈이에게 새 학년이 시작되는 봄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계절. 새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들뜬 유빈이가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는다. 일산병원 이지연 교수님과 처음 만난 순간, 유빈이에게 설레는 봄이 시작된 날이다.
글. 박향아 사진. 현진(AZA스튜디오)
한 달에 한 번 유빈이는 엄마와 함께 일산병원을 찾는다. 마을버스,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고, 다시 지하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면 하루를 오롯이 할애해야 하는 먼 거리. 그래도 유빈이는 병원에 가는 길이 좋다.
“차를 오래 타야해서 조금 힘들긴 한데, 엄마가 병원갔다 오는 길에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시거든요. 치료받을 때는 조금 아프긴 하지만, 선생님한테 치료받으면서 좋아하는 과자랑 고기도 잘 씹을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아요. 입을 안 가리고 크게 웃을 수 있게 된 것도 너무 좋고요.”
유빈이가 처음 일산병원의 이지연 교수를 찾은 것은 3년 전. 아빠가 위암으로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동네 치과에 갔다가 큰 병원에 가보라는 얘기에 일산병원을 찾았고, 이지연 교수는 당시 유빈이의 심각했던 치아 상태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유빈이가 6살이었는데, 충치가 너무 심해서 유치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어요. 앞니는 코쪽을 향해서 비정상적으로 자라 있었고, 반대로 물린 치아는 그대로 두면 영구치가 나온 후에도 심각한 부정교합으로 진행될 수 있었고요. 당장 치료와 교정이 필요한 상태였죠.”
충치로 검게 변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유빈이의 치아는 ‘씹는’ 자체가 불가능할 정로로 심각한 상태였다. 실제로 당시 유빈이에게는 밥 먹는 시간이 가장 괴로운 시간이었다. 무조건 물이나 국에 밥을 말아 ‘꿀꺽’ 삼켜야 했으니 말이다. 언니들이 고기며 과자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심통이 나 괜히 울어버린 적도 여러 번. 검게 변한 이가 창피해서 웃을 때는 늘 손으로 입을 가리곤 했다. 잘 먹고 잘 웃는 것. 또래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유빈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딸의 모습이 가장 마음 아팠을 엄마는 “당장 교정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에도 선뜻 치료를 결정하지 못했다. 남편 하나만 보고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3명의 딸을 낳고 열심히 살았지만, 위암으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살길이 막막했던 상황. 생계를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남편의 병원비로 진 빚을 갚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유빈이 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치료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요. 맘이 아팠어요. 그때 이지연 선생님이 우리 유빈이 치료받게 해줬어요. 좋은 사람들 도움으로 우리 유빈이 예쁘게 됐어요. 이제 밥도 잘 먹어요. 너무 많이 고마워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유빈이 엄마는 서툰 한국어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속상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당장 치료를 해야 한다’는 얘기에도 선뜻 “그러마” 할 수 없었던 당시를 말이다.
이지연 교수는 그 ‘망설임’ 속에서 유빈이네 가족의 어려움, 그리고 엄마의 안타까움을 읽어냈다.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에 직접 유빈이의 사정을 전달하고, 한국어가 서툰 유빈이 엄마를 대신해 치료비 지원을 위한 각종 절차들을 함께 밟아 나갔다. 일산병원 공공사업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환자들의 어려움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교정치료는 절대 놓치면 안 되는 시기가 있고, 유빈이는 당장 치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한참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고 많은 친구들을 만나며 몸과 마음이 성장해야 하는 시기였기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했죠.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복지제도와 방법들이 있는데, 정보를 몰라서 치료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유빈이처럼 어려운 모든 환자들의 치료비를 대신 내줄 수는 없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 연결해줄 수는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이지연 교수의 노력과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후원으로 교정치료가 시작됐고, 유빈이의 마음에도 설레는 봄이 찾아왔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복지제도와
방법들이 있는데,
정보를 몰라서 치료시기를 놓쳐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어려운 환자들을 대신해 치료비를 내줄 수는 없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해줄 수는 있는 거니까요.
3년의 시간이 흐르고, 유빈이와 이지연 교수는 세 번째 봄을 함께 맞이하고 있다. 충치 치료와 발치, 교정치료를 꾸준히 진행한 결과, 이제는 좋아하는 고기도 꼭꼭 잘 씹을 만큼 치아 기능이 좋아졌다. 비정상적으로 자란 앞니도 가지런하게 자리 잡아 가면서 손을 가리고 웃던 습관도 사라졌다. 이제 유치가 빠진 자리에 영구치가 건강하고 예쁘게 나올 수 있도록 지켜보며 기다리면 된다.
“영구치가 다 나오고 잘 자리 잡도록 공간을 만들고 지켜보려면, 앞으로 2~3년은 교정치료를 더 받아야 해요. 처음에는 말도 없고 잘 웃지도 않던 유빈이가 조금씩 밝아지는 걸 보면서 의사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유빈이가 계속해서 밝게 웃을 수 있도록 치료가 잘 마무리 되고, 그래서 받은 도움을 어떤 형태로든 되돌려 줄 수 있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지연 교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유빈이는 요즘 부쩍 꿈이 많아졌다. 과자를 사러갈 때마다 친절하게 웃어주는 마트 계산원 언니도 되고 싶고, 누구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도 되고 싶다. 어떤 날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가도 또 다른 날에는 농구 선수가 되고 싶기도 하다. 그 많은 꿈들 사이에서 3년째 변치 않는 꿈이 하나 있는데, 이지연 교수님처럼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는 것. “의사 선생님이 되어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공부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좋아서 고민”이라며 활짝 웃는 유빈이. 유빈이의 밝은 웃음도, 예쁜 꿈도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