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다. 그중 몇 시간을 다른 이를 위해 내어놓는다는 것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몇 달도, 몇 년도 아닌 19년째 실천하고 있는 이가 있다. 개원 초기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일산병원을 지키는 김희자 자원봉사자 이야기다.
글. 정라희 사진. 남윤중(AZA스튜디오)
일산병원 개원 당시부터 지금까지 19년째 자원봉사를 해오고 있다는 이야기에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듣는 이들에게는 놀라움이지만, 정작 봉사를 실천해온 김희자 님에게 19년이라는 오랜 기간은 특별함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세월이 쌓였을 뿐이다. 처음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연에 가까웠다. “딱 3개월만 봉사해달라”는 지인의 청을 수락했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대단한 결심이 있어서 봉사를 시작했던 건 아니었어요. 당시 일산병원에서 근무하던 지인 덕에 시작했죠. 부탁하면서도 제가 오래 하지 못할까 봐 ‘3개월은 꼭 채워주세요’ 하고 당부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기간을 정해두고 시작했는데, 막상 하다 보니 제가 계속 봉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작은 도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보탬이 된다는 보람이 이끈 나날. 그 후로 19년간 그녀는 목요일 오후를 일산병원 안내 봉사를 위해 오롯이 비워두었다. 봉사시간 3,000시간을 달성한 몇 해 전부터는 월요일 오후에도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입었다.
스스로는 한 번도 세어본 일 없는 시간. 병원에서 감사패를 받고서야 비로소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을 알았다. 얼마 전에는 봉사시간 3,500시간을 채웠다. 노년의 나이에 네 시간을 서서 봉사하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우랴. 하지만 김희자 봉사자는 몸의 피로보다 환자를 돕는 일에 마음을 더 쏟았다. 몇 년 전부터는 새롭게 도입된 무인수납기 안내를 맡아 기계 사용이 낯선 환자들에게 사용법과 관련한 도움을 주고 있다.
“봉사를 하다 보니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저도 모르게 눈부터 웃고 있어요. 자원봉사자 유니폼을 입고 있을 때는 괜찮은데, 봉사를 마치고 집에 갈 때 그러면 상대방이 당황하기도 해요.(웃음)”
일산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삶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일까. 스스로 “일산병원을 사랑한다”고 전할 만큼, 일산병원을 향한 그녀의 애착은 남다르다. 개원 초기에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적어 자원봉사자에게 제공하는 식사 한 끼를 먹는 일도 미안했다는 김희자 봉사자. 그래서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는 환자가 들어오면 열심히 인사하고 안내하는 일에 매진했다고 한다. 내원객이 늘어난 것은 물론 많은 면에서 눈부시게 성장한 일산병원의 현재를 보면 어쩐지 가슴 한편이 뿌듯해진다.
신뢰는 곧 또 다른 나눔으로 이어졌다. 몇 해 전부터 매년 300만 원에서 500만 원씩 일산병원에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것. 어느덧 그녀가 후원한 기부금이 2,700만 원을 넘겼다. 아쉽게도 19년간 이어온 그녀의 봉사 여정은 그녀가 여든이 된 올해로 갈무리된다.
“저는 처음에는 제가 일산병원에 봉사한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일산병원이 저를 위해 봉사해주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눈에는 파릇파릇한 청춘으로 보였던 교수님들도 이제는 꽤 중후해지셨죠. 그동안 일산병원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 즐거웠습니다.”
19년의 봉사활동에 마침표가 될 올해, 아쉽게도 20년을 채우지는 못하지만 그녀는 더욱 정성스럽게 자리를 지키며 일산병원에서의 추억을 눈으로 가슴으로 새기려 한다. 일산병원 자원봉사자의 자리는 내려두어도 그녀의 삶은 계속된다. 나눔으로 쌓은 따스한 힘으로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녀는 아름다운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