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은 가장 우아하게 시간을 잃는 일이다.’ 프랑스 학자이자 『걷기 예찬』의 저자 다비드르 브르통 교수의 정의다. 올레길, 둘레길, 순례길 등 도시와 자연 그리고 사람을 잇는 걷기 여행이 대세인 요즘, 한국관관공사가 추천하는 봄에 걷기 좋은 여행길을 소개한다. 피어나는 아지랑이 따라 느릿느릿 걸으며 봄의 프러포즈를 온몸으로 받아보는 것은 어떨까.
글. 곽한나 기자 사진. 안산시청, 당진시청, 진안군청, 안동축제관광재단, 합천군청
대부해솔길은 바다와 숲, 갯벌, 염전, 갈대, 낙조까지 자연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신비롭고 낭만적인 길이다. 총 7개 코스(74Km)로 해안선을 따라 대부도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1코스는 대부도 관광안내소에서 솔숲 길로 이어지는 방아머리공원에서 시작한다. 아스라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면 오감이 절로 기지개를 편다. 1코스의 백미인 개미허리 아치교는 개미의 잘록한 허리 모양을 닮아 이름이 붙여졌다. 드넓은 바다를 배경으로 구봉도와 낙조전망대를 잇는다.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서해안인 만큼 낙조 시간에 맞춰 전망대에 서면 형언할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1코스 외에도 7천만 년 전 만들어진 퇴적암층과 호수, 정문규미술관, 탄도항을 두루 거치는 6코스도 매력적인 추천 코스다. 서해안은 3월부터 6월까지 꽃게가 제철이다. 꽃게찜, 꽃게탕, 간장게장 등 여름철 산란을 앞두고 살이 꽉 찬 국내산 꽃게는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다면 개운한 국물과 통통한 바지락살이 살아 있는 바지락칼국수도 좋다.
우리나라 천주교는 풀뿌리 역사로 불린다. 백성들이 스스로 책을 들여와 공부하며 신앙 공동체를 이뤘고, 갖은 박해 속에서도 숭고한 믿음을 지켜왔다. 충청남도 당진의 버그내순례길은 무려 17개의 천주교 성지를 만날수 있는 우리나라 대표 천주교 성지순례 코스다. 신앙인들의 고요한 순례길이었던 이곳은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하면서 대중에도 명성을 얻게 됐다. 버그내순례길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솔뫼성지에서 출발해 마을 주민들의 삶의 터전인 합덕시장과 합덕제를 지나 농촌테마공원으로 이어진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없는 평탄한 길인 데다 곳곳에 친절한 이정표와 편의시설을 갖췄다. 순례길 마지막 여정인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서는 천주교 박해와 순교 과정을 대형 그림으로 접할 수 있어 인상 깊다.
드넓은 평야가 주는 넉넉함과 성지마다 어린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덕분일까. 종교에 관계 없이 쉼과 여유를 찾아온 여행자들은 걸으며 위안을 얻는다. 버그내순례길은 올해부터 스탬프 투어도 진행한다. 솔뫼성지, 합덕성당, 합덕수리민속박물관 등 3곳에서 스탬프 책자를 배부하고, 완주 후 동일한 배부처에 책자를 가져오면 스탬프와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전라북도 진안의 감동벼룻길은 용담댐에서 흘러나온 금강의 물줄기를 따라 감동마을까지 걷는 코스다. 호수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맑디 맑은 금강에 데칼코마니처럼 비친 자연은 온통 연둣빛으로 마음을 적신다.
신용담교와 섬바위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벼룻길에 접어든다.
‘벼룻’은 벼랑길을 뜻하는데 금강을 옆에 낀 산허리의 오솔길을 걷다 보면 그 의미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약간의 긴장을 지닌 채 홀로 걷는 벼랑길에서는 꽃들도 풀 한 포기도 새롭게 다가온다. 마지막 지점인 감동마을은 교통 편이 자주 있지 않아 왕복 코스 걷기를 추천한다. 왕복으로도 3시간의 거리가 짧게 느껴진다면 용담댐 주변에 마련된 물문화관과 조각공원에 들르자. 북카페, 어린이놀이방 등 편의시설이 잘 마련돼 있고, 탁 트인 용담댐을 배경으로 야외 조각 전시를 둘러보며 운치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안동하면 하회마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최근에는 선비순례길을 따라 고택과 서당, 서원, 향교를 자연스럽게 둘러보는 뚜벅이 여행객이 많아졌다. 선비순례길 중에서도 군자마을부터 월천서당까지 이어지는 1코스가 인기다. 선비순례길이 시작되는 군자마을은 관광마을로 옷을 입힌 곳이 아니다. 실제 마을 사람들이 기거하며 삶을 일구는 터라 그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마을에선 고택 체험도 가능하니 걷기 여정에 앞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정돈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선비순례길이 입소문을 탄 이유에는 선성현문화단지부터 안동호반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수상데크길이 한몫을 한다. 호수 주변을 따라 걷는 것이 아닌 호수를 가로질러 뜬 부유 데크가 1km가량 이어져 물 위를 걷는 특별한 감흥을 안긴다. 안동호와 주변 산지가 전하는 고요하고 아늑한 분위기는 덤이다.
해인사 소리길은 이름처럼 청아한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가 끊이지 않아 걸음마다 봄의 향연이 열린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 입구에서 시작해 홍류동 계곡을 따라 대장경테마파크에 이르는 코스는 완만한 수평 통행로로 이어진다. 2시간 30분 정도의 비교적 짧은 거리인 데다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이동할 수 있어 아이나 장애인이 있는 가족도 봄 여행으로 계획해볼 만하다. 소리길에서는 농산정, 칠성대, 낙화담 등 가야산 19개 명소 중 16개를 만날 수 있다. 특히 바위 절벽 아래 계곡물이 웅덩이를 이루는 낙화담 정취가 무척 빼어나다. 낙화담 바로 위에 있는 전망 데크는 소리길 여행의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존이니 놓치지 말 것. 봄 여행에 벚꽃이 빠질 수 없다고 느낀다면 합천호 주변 백리벚꽃길로 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