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하 교수는 진단혈액 분야와 분자유전 분야(유전상담, 유전자검사, 염색체검사, 유전질환 가족검사 등)를 담당하고 있으며, 2008년 신설된 유전클리닉에서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로서는 드물게 직접 외래 진료도 보고 있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세포의 모양도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검사 결과를 해석해서 내리는 병의 진단도 천편일률적으로 판단할 순 없다. 유종하 교수(진단검사의학과)가 섬세한 관찰의 ‘기록’을 통해 환자들의 차이를 깊이 살피는 이유다.
글. 정라희 사진. 이서연(아자 스튜디오)
유종하 교수는 하루에도 수많은 검체를 검사하고 진단을 내린다. 진단검사의학과 특성상 환자의 얼굴을 마주 볼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정밀한 진단은 그에게서 비롯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는 ‘검체 하나하나가 환자’라 여기며 검사에 임한다. 정확한 진단을 통해 정확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일. 그것이 바로 진단검사의학과 의사의 소명이라 생각하는 까닭이다. 최근에는 진단에 따라 처방받을 수 있는 치료제도 많이 변화했다. 최선의 진단을 내리려면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유종하 교수는 수첩을 들었다. 누군가는 수첩에 하루의 단상을 쓰지만, 그는 주로 환자의 세포를 그린다.
“특정 환자의 세포 형태를 기록해두면, 그 환자의 세포가 특정 치료를 받은 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추적관찰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전공의 시절이던 1999년부터 시작했으니, 벌써 20년 된 습관이네요.”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의 슬라이드는 50여 개 내외. 모든 환자의 사례를 기록하긴 어렵지만, 특이한 경우를 발견하면 바로 수첩을 펼친다. 매일의 기록이 쌓이면, 소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실제로 그가 활동하는 대한진단혈액학회와 대한진단유전학회에서 학술 발표를 할 때, 이 기록을 참고하기도 했다.
수첩에 쓰는 기록은 단순하다. 하지만 의사로서 살펴야 하는 핵심 요소는 두루 들어간다. 삼색볼펜을 활용해 적혈구는 빨간색으로, 백혈구나 혈소판은 파란색으로 그린다. 치료 후에 비정상세포가 얼마나 감소했는지 기록하기도 한다. 어떤 환자는 두세 번 기록할 때도 있다. 기록에 근거한 연구 열정은 다른 분야에서도 이어졌다. 올해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대한진단혈액학회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진단검사의학과에도 임상화학·미생물·진단면역·수혈 등 6개 세부 전공이 있다. 유종하 교수는 진단 혈액 분야와 분자 유전 분야에 주로 집중해왔다. 그는 일산병원이 국내 병원 중에서는 선도적으로 유전클리닉을 개설하는 데 손을 보탠 인물이다. 일산병원은 2008년에 처음 유전클리닉을 개설했고, 2015년 5월에는 외래 진료실까지 별도로 마련했다. 덕분에 유종하 교수는 진단검사의학과 의사로서는 드물게 직접 외래 진료를 하고 있다.
“유전성 질환은 판독 소견에 따라 환자 가족에게도 검사를 추천합니다. 하지만 다른 진료과에서는 어떤 곳으로 환자 가족을 보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소아 환자 부모가 소아청소년과에서 진료를 받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정식으로 유전클리닉을 열고 이곳에서 유전자 검사를 선택 처방하고 검사 시행 후에 결과 분석과 설명까지 하고 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가 받은 브라카 유전자(BRACA) 검사 역시 유전성이 강한 질환이다. 2016년부터는 유방암·난소암·대장암 등 120개 질환의 경우, 환자에게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면 가족에게도 유전자 검사 보험이 적용되어 조기에 발견할 기회가 더욱 커졌다.
“브라카 유전자의 경우 유전 확률이 50%나 됩니다. 자녀뿐만 아니라 형제나 자매 역시 마찬가지죠. 유전자 변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암에 걸리는 건 아니자만 확률이 높죠. 설령 변이가 있다고 해도 암발생 위험관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최적의 치료와 예방을 위한 그의 조언은 병원 밖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부터는 포털 사이트 지식인 상담 전문의로 활동해왔다. 멈추지 않고 다방면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의 노력이, 환자에게 도움을 주는 또 하나의 실마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