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안고 한국에 입국한지 불과 열흘, 몽골인 바뜨이르뜬 씨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급박하게 일산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의료비 부담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자 보험이 없는 외국인의 신분 탓에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가입 가능한 의료 공제회를 찾았고 본원 ‘사회사업후원금’ 수혜자로 선정돼 바뜨이르뜬 씨는 비로소 새 희망을 얻었다.
글. 이선 사진. 현진(아자 스튜디오)
몽골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바뜨이르뜬 씨는 밝은 미래를 꿈꾸며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일자리를 얻기에 그의 나이와 건강은 큰 장애물이었다. 특히 그는 종종 호흡곤란과 가슴통증을 겪었기에 경제활동이 더욱 어려웠다. 그러던 중 임시 거주 중인 고시원에서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채 발견돼 응급실로 이송됐고,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 충격을 받았음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응급 관상동맥 성형술 및 스텐트 삽입술을 받아야 했다.
바뜨이르뜬 씨의 시술을 진행한 신상훈 심장내과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ST 분절 상승 급성심근경색은 촌각을 다투는 응급 질환이어서 환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한 채 급하게 시술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바뜨이르뜬 씨 역시 마찬가지였죠. 당시 시술 자체는 크게 힘들지 않았지만, 환자분이 한국어를 전혀 못하시는 데다 연고 또한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지요. 언어가 통하지 않아 환자에게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거나 진단명, 지침 같은 것을 설명해드릴 수 없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천만다행이었던 것은 몽골의 경우 해당 질환에 대한 기술과 정보가 아직 부족한 상태여서 만약 몽골에서 발병했다면 운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일산병원의 의료기술과 신상훈 교수의 시술 덕분에 생명을 구한 바뜨이르뜬 씨. 그에게 한국은 새 삶을 가져다 준 또 다른 고향인 셈이다.
국내 의료기술과 적절한 응급처치 덕분에 바뜨이르뜬 씨는 빠르게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있었다. 의사소통이 불가하고 연고가 없는 것은 물론 보험도 없어 의료비가 막막했던 것이다. 몽골에서도 생계가 어려워 국가 지원을 받던 그였기에 부담은 더욱 컸다. 바뜨이르뜬 씨가 난관에 부닥친 순간, 그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한 이가 원무팀 권용일 직원이다.
“몽골 대사관부터 각종 의료기관과 공제회, 심지어 문화체육관광부까지 의료비 지원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다들 불가하다는 답변을 주셨어요. 너무 막막했지만 우리도 다른 나라에 가면 똑같은 상황을 겪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저라도 이분을 꼭 도와야겠더라고요.”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재검토를 요청한 결과, 한국이주민건강협회의 ‘희망의 친구들’ 의료공제회로부터 가입 허가를 받았고 일산병원 사회사업후원금 지원 또한 받을 수 있게 됐다. 수소문 끝에 제주도에 있는 바뜨이르뜬 씨의 조카와 연락이 닿아 서툴게나마 의사소통도 할 수 있게 됐고, 조카 분이 없을 때는 스마트폰 번역 애플리케이션으로 조금씩 소통하며 지낼 수 있었다.
다만 몽골어 키보드 기능을 찾지 못해 바뜨이르뜬 씨의 말을 한글로 번역할 수는 없었다고. 번역된 몽골어를 보며 밝은 미소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바뜨이르뜬 씨는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는지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건강을 되찾아주신 일산병원에 감사드리고 몽골에 돌아가면 전보다 열심히, 제2의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는 바뜨이르뜬 씨. 몽골에서 이어질 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