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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Life

함께 걷기

마음을 보듬어
희망으로 나아가다
정신건강의학과 이정석 교수와 김준호 씨(가명)

거리를 걷고 있으면 자꾸만 누군가 쳐다보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밖을 나서기가 꺼려졌고, 수개월 동안 외출 한 번 하지 않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서 병원 문을 두드렸고, 다시금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작했다. 일산병원 낮병동을 오가며 보낸 8개월의 시간은 불안했던 그의 마음을 치유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글. 정라희 사진. 남윤중(AZA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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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 반,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반으로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이 바로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희망의 공동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은둔형 인간으로 지내면서도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도 결코 편할 수는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 반, 힘들어하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반으로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문을 두드렸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것이 바로 ‘변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것 같다’라거나 ‘이상하게 쳐다본다’ 같은 불안감에 사회생활을 꺼려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넓은 범주에서 말하자면, 일종의 사회 불안 증상이지요.”
정신건강의학과 이정석 교수의 말이다. 일산병원은 드물게 정신건강의학과 외래 진료는 물론 폐쇄 및 개방병동, 재활, 낮병동에 이르는 통합 시스템을 갖춘 곳이다. 이정석 교수는 입원 치료를 마치고 퇴원하는 김준호 씨가 다시금 건강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낮병동 프로그램을 권유했다. 낮병동은 입원 치료와 외래 치료의 장점을 결합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의 한 형태다. 학교에 다니듯 낮에는 병원의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사회 불안은 사회에 나가야 비로소 좋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캠퍼스나 직장에서는 누군가 불안해하고 머뭇거리더라도 아무도 봐주지 않지요. 낮병동에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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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잊고 희망찬 내일을 향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김준호 씨는 낮병동 생활을 하면서 점진적으로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낮병동에서는 의사소통훈련을 비롯해 심리극, 음악요법, 원예요법, 미술요법, 운동요법, 신문 읽기, 차 모임, 정신건강교육, 사회적응훈련, 소풍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서연 사회복지사는 “낮병동에는 정신보건 간호사,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정신보건 심리사 등 전담 인력이 따로 있어 환자들이 단계적으로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돕는다”고 전한다.
전문인력으로부터 섬세한 돌봄을 받은 그는 “낮병동에서 했던 프로그램 모두 하나하나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월요일 첫 시간에는 회원들이 함께 모여 자치 회의를 하면서 공동의 목표를 정하고 한 주 동안 함께 지켜나갔고, 주중에는 레크리에이션을 하면서 회원들과 친해지는 시간도 가졌다. 과거의 사건이나 감정을 다루는 심리극을 하면서 힘겨웠던 순간도 극복할 수 있었다. 금요일에 진행하는 자치 활동에서는 각자의 관심사를 주제로 발표도 했다. 김준호 씨는 “낮병동에서 회원들과 만난 것도 인연”이라며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지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낮병동에 다니면서 이곳이 또 하나의 작은 사회라고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이제는 가족들이나 친척들과도 대화를많이 나누고 있어요. 낮병동 방학 때는 계획을 세워서 혼자 여행도 하고 영화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다시 교회에도 나가고 있고요.”

낮병동은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의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지난 시간 저를 지켜봐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정신의학과 낮 병동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잠시 미루어 두었던 학업을 시작하며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도전이다. 이정석 교수는 “이미 많이 친해진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야 하다 보니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하고 사람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김준호 씨만 겪는 특수한 증상은 아닙니다. 누구나 그렇듯 개강 직후에는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어요. 하지 만 언젠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이 나아지고 편해질 날이 올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계속해서 응원하며 지켜보려고 합니다.”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그가 그동안의 경험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한 것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방문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낮병동은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의 따뜻한 공동체입니다. 지난 시간 저를 지켜봐 주시고 도움 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혹시 병원 방문이 꺼려지는 분들이 계신다면, 제 이야기를 참고해서 용기 내시길 바라요. 꼭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낮병동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대학 캠퍼스로 돌아가는 그가 세운 첫 번째 목표는 ‘학교생활 잘하기’다. 수업도 듣고 동아리 활동도 병행하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싶다. 좋아하는 유럽 축구팀 이야기를 할 때는 한껏 목소리가 밝아지는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이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이 글은 지난 2019년 4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안정적인 사회적응을 위해 낮병동에서 치료를 받은 환자 김준호 씨(가명)의 후기입니다.
은둔형 인간에서
복학을 앞둔
평범한 학생이 되기까지…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되찾은 새 삶

안녕하세요? 저는 낮병동 퇴원을 앞둔 환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9년 2월, 저는 집밖을 나가지 않는 ‘은둔형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저에게 조심스럽게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며 “함께 꼭 가보자”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저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지, 힘들어하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가보자’라는 생각이 들어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첫 진료를 받으며 한 번에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 생각과는 다르게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닫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제가 변할 수 있는 단계의 첫 걸음이란 것을요. 한 번, 두 번 정신과 진료를 이어갔으나 별다른 변화도 없는 것 같고, 오히려 약에 대한 부작용으로 힘들어 하자 담당 선생님은 제게 입원을 권하셨습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제게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의료진과 소수의 환우들과 함께하는 집단치료, 음악치료, 스트레칭 하는 시간은 따분한 병동생활 중 활력감과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게 해주는 시간이었습니다.
약 한 달간의 입원 기간이 끝나고 퇴원을 앞둔 제겐 한 가지 걱정이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간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또 집안에서만 생활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일산병원의 ‘낮병동’이라는 시설을 소개 받았고, ‘강제로라도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낮병동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집에만 있고 숨어 지내는 제게 낮병동의 사회적응훈련은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한 달에 1~2회 정도 병원 밖으로 활동을 나가는 것인데 이때 활동 내용과 식사 메뉴 모두 회원들이 정하게 됩니다. 인사동, 방 탈출, 꽃 박람회, 미술관 등 수많은 곳에서 제가 힘들어 하는 부분들에 맞서 부딪히면서 점차 증상이 완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한 기술을 배우는 ‘의사소통훈련’, 자신의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심리극’도 접해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낮병동을 다니면서 저희 가족 관계에 변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점차 활동적으로 변하고 말도 많아지면서 집 안엔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가족간에 끈끈한 정이 생겨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 외출을 하지 않았던 제가 이제는 혼자 강릉을 다녀올 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게다가 퇴원을 앞두고 ‘뭘 하지’라는 방황이 아닌 ‘대학교 복학’ 이라는 명확한 계획도 세웠습니다. 학업뿐만 아니라 낮병동에서 배우고 연습한 것처럼 대인관계도 잘 해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정신과 병원, 또는 낮병동에 다니는 것을 주저하시는 분들께 용기를 가지고 한 번 나와 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렵게 내딛는 그 한 번의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처럼 정말 50%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수도 있고, 나 자신의 변화를 위한 위대한 한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낮병동에 다니면 다닐수록 드는 생각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마음의 병이 있다면 제 수기를 통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용기를 내어보시라고 감히 전하고 싶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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