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이 많은 외과 의사들에게는 각자 자신만의 재충전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홍기표 교수(흉부외과)는 그것을 ‘음악’이라고 전한다. 지친 심신을 쉬게 해주고 다음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힘을 충전해 주는 그의 음악 이야기를 들어본다.
글. 백미희 사진. 이서연(아자 스튜디오)
생사가 오가는 수술실은 극도의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어느 날은 수술을 연달아 진행하고 오후가 되어서야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연구실로 돌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오후 회진 전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넉넉지 않다.
홍기표 교수는 책장에서 CD를 꺼내 재생시키고 연구실 의자에 누워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다. 20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연구실에서 휴식과 재충전을 함께 한 음악 중 홍 교수가 아끼는 앨범은 미국의 재즈피아니스트 존 루이스의 <J.S. Bach Preludes & Fugues> 시리즈 4장이다.
“2000년도 초반쯤 우연히 어떤 분의 차를 타고 가다가 흘러나온 음악을 듣고 마음을 사로잡혔죠. 다소 딱딱하고 지루할 수 있는 바흐의 평균율을 재즈로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편안하게 연주하는 매력에 이끌렸어요. 잠깐 눈 붙여야 할 때 틀어놓으면 다음 환자들을 진료할 힘이 납니다.”
비단 수술실에서 하루를 보낸 날만 존 루이스의 재즈 피아노곡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원칙주의자인 홍 교수의 일상에는 ‘힐링과 재충전’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외과 의사는 강박적인 정도로 원칙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고 강조한다. 수술할 때는 무엇보다 환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수술과정을 설명할 때도 교과서에 나올만한 모든 합병증에 대해 꼼꼼하게 전달한다. 강박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느라 지칠 때, 특히 오후 회진을 돌기 전 재충전이 필요한 시간은 항상 음악과 함께한다.
얼마 전 대한정맥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된 홍 교수는 “하지정맥류를 왜 흉부외과에서 진료하냐”는 질문을 곧잘 받고 한다. “흉부외과의 공식명칭이 흉부심장혈관외과입니다. 그래서 심장도 다루고 혈관도 다루죠. 흉부는 폐와 식도 등을 모두 포함해서 다룹니다. 그래서 폐암, 식도암, 기도질환, 능막질환, 횡경막질환, 다한증, 심장판막질환, 관상동맥질환, 대동맥질환, 말초혈관질환, 하지정맥류 등 흉부외과에서 다루는 질환이 많습니다. 하지만 일반 환자들은 ‘흉부’와 ‘혈관’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서 의문을 표하곤 합니다.”
인구의 20~25%가 가지고 있다는 하지정맥류. 하지만 관련된 편견도 그만큼 많아서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남성분들 중 하지정맥류를 남성의 상징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엄연한 질병입니다. 방치하면 서서히 진행되어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합병증이 발생하면 피부염이나 피부 궤양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치료 후에는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으니 합병증이 발생하기 전 미리미리 치료하는 게 좋습니다.”
게다가 흔히 하지정맥류는 무조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리가 불편하고 무겁다’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아 초음파검사를 해본 후에야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다. 홍 교수는 발병 비율이 높은 질병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하지정맥류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숙지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현재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흉부외과 과장으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흉부외과학 교실 임상교수, 대한흉부외과학회 하지정맥류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얼마 전 흉부외과 의사로서는 처음 대한정맥학회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