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연한 하늘빛 사이로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기 마련이다. 여름에서 겨울로 향하는 찰나의 시간, 차 창 밖으로 가을에 물든 풍경을 바라보며 떠나는 드라이브 코스를 소개한다. 도심에서 가까워 부담은 줄이고 문화와 예술 산책을 곁들여 가을 여행의 묘미를 살렸다.
글. 곽한나
사진. 한국관광공사, 포천시청
고양시 덕양구와 의정부시 가능동을 잇는 39번 국도인 평화로를 따라 장흥파출소 앞에 다다르면 권율로라고 불리는 갈래길을 만난다. 권율 장군의 이름을 딴 이 도로는 장흥아트파크부터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안상철미술관과 기산저수지에 이르는 드라이브 코스다. 드라이브와 함께 수준급의 미술관 기행까지 덤으로 할 수 있어 가을 여행에 잘 어울린다.
가을날의 기산저수지는 높은 산에 둘러싸여 수려한 경치를 자랑한다. 울긋불긋 물든 산과 일렁이는 물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운치를 만들어낸다. 아름다운 풍경 덕분에 한옥카페를 비롯해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드라이브와 함께 분위기 있는 한 끼의 음식과 차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기산저수지를 정원처럼 끌어안은 안상철미술관과 더불어 놀이터처럼 친근한 예술 공간을 만들어 낸 장흥아트파크, 어른도 사로잡는 피카소어린이미술관,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인 장욱진미술관까지 자연과 예술이 깃든 양주 드라이브 여행은 하루 해가 유독 짧게 느껴진다.
제3경인고속도로, 서울외국순환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등이 만나는 시흥은 도심에서 비교적 가깝게 찾을 수 있는 바다 드라이브 코스다. 특히 월곶포구는 송도국제도시의 고층 빌딩과 길게 뻗은 남동 대교를 배경으로 늘어선 고깃배와 갈매기가 날아드는 도심 속 바다의 흔치 않은 풍경을 선사한다. 맞은편 소래포구에 비해 한가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내 가을에 찾기에 적격이다. 특히 일몰 즈음 노을로 물든 월곶포구는 마음을 절로 차분하게 가라앉혀준다.
일몰을 감상한 후 맛보는 꽃게탕과 대하구이도 별미다. 그윽하고 은은한 연꽃 향기로 번잡한 시름을 씻어내고 싶다면 연꽃테마파크를 추천한다. 뜨겁게 꽃을 피워낸 여름의 끝자락에서 몇 송이의 수련꽃이 아련한 미소를 짓는다. 갯골생태공원의 흔들전망대에서 지평선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광활한 대지를 내려다 보는 것도 시흥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다.
시화호로 향하는 드라이브 코스는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갈대밭 풍경이 가을바람처럼 마음에 머무는 곳이다. 시화방조제와 대부도, 시화호 간척지 일대를 달리며 울퉁불퉁한 비포장길도 있지만 낮에는 흔들리며 반짝이는 갈대숲과 늦은 오후에는 간척지 너머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간척지 도로는 최대한 속도를 낮추고 천천히 달리는 것이 좋다. 멋진 자연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먹이를 찾아이곳을 찾은 새들이 놀라기 때문이다. 무리지어 한가롭게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은 일상을 떠난 드라이브 여행의 자유로움을 더해준다. 안산시와 화성시의 경계를 넘어 공룡알화석지로 향하면 세계 3대 공룡알화석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0여개의 알둥지와 200여개에 달하는 공룡알 화석을 만날 수 있다. 공룡알의 흔적을 찾아 나무데크로 이어진 탐방로는 1.53km의 달하는 갈대밭 산책로이기도 하다. 갈대와 바람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낯선 타국에 온 듯, 어렴풋한 꿈길을 걷는 듯 몽환적인 낭만에 빠져든다.
98번 국도인 국립수목원로는 포천 소흘읍 축석검문소에서 시작해 국립수목원과 광릉을 지나는 구간으로 구불구불 휘어지는 도로를 따라 높이 솟은 거목들을 만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다. 1차선으로 통하는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광릉수목원으로도 잘 알려진 포천의 국립수목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수목원이다. 500년 이상의 세월이 만들어낸 광활한 원시림은 사계절 모두 좋지만, 붉고 노랗게 무르익은 숲의 전경은 음악이나 대사 없이도 한 편의 가을 영화처럼 다가온다. 버려진 채석장을 예술 공간을 탄생시킨 포천아트밸리는 실내외 예술 작품 감상과 함께 국악, 클래식, 버스킹 등 다채로운 공연도 즐길 수 있다. 모노레일을 타고 기암절벽 아래 흐르는 맑고 깨끗한 천주호의 풍경도 놓치지 말자.
‘책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파주출판도시는 1989년 출판유통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 출판인들이 모여 만든 곳이다. 파주출판도시로 향하는 자유로는 그 이름처럼 막힘없는 시원한 드라이브 코스다. 한강과 임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자유로와 심학산 사이에 자리한 파주출판도시는 가장 큰 도로인 문발로를 중심으로 세련되고 멋스러운 출판사 건축물들이 위엄찬 모습을 드러낸다. 파주출판도시는 지혜의 숲, 문발리 헌책방, 풀린키 인생사진관, 보리책방 등 크고 작은 책방과 북카페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높은 천장까지 50만여권의 책으로 가득 찬 지혜의 숲은 마치 거대한 책의 숲 속에 들어 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친김에 파주출판도시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지지향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소박하지만 말끔하게 정리된 공간이 깨끗한 순면같은 하루를 선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