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두 종류의 미생물이 함께 있으면, 한쪽에서 분비하는 물질이 다른 쪽의 발육을 발행한다. 이것을 ‘항생(抗生)’이라고 한다. 미생물은 생존을 위해 항생물질을 만든다. 이런 천연 항생물질에서 항생제가 나왔다. 인류는 오랫동안 각종 전염병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는 전염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항생제가 있다.
정리. 편집실 참고도서. 정승규 <인류를 구한 12가지 약 이야기> / 반니
의약품 개발 역사에서 페니실린만큼 위대한 업적은 없다. 20세기 인류의 생명을 가장 많이 구한 약을 꼽으라면 단연 페니실린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페니실린이 등장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항생제가 나올 수 있었다.
영국 미생물학자 알렌산더 플레밍(1881~1955)은 자신의 콧물에서 라이소자임(Lysozyme)을 발견했다. 라이소자임은 콧속에서는 일반 세균을 억제하지만 병원균에는 효과가 없었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라이소자임이 향균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통해 세균만 죽이는 향균물질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어느 날 그는 포도상구균을 납작한 접시에 배양했는데, 아래층 실험실의 푸른곰팡이 포자가 날아와 플레밍의 배양접시에서 번식했다. 그런데 푸른곰팡이 주변에는 세균이 자라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푸른곰팡이가 항균물질을 만들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플레밍은 푸른곰팡이 배양액 속에 있는 항균 물질을 다량 분리하려고 했으나, 불안정해 실패했다.
이후 페니실린을 분리하고 대량생산에 성공해 약으로 발전시킨 사람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 병리학교수인 하워드 플로리(1898~1968)이다. 그는 pH 5.5~7.5의 약산성과 온도가 2~25℃인 수용액애서 페니실린이 안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세균의 세포벽을 파괴하는 독특한 기전으로 인해 페니실린은 세포막으로 이뤄진 인체에는 해를 주지 않는다. 인류는 푸른곰팡이의 선물 덕에 세균 감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와 함께 인간의 평균 수명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결핵에 걸리면 기침을 많이 해서 가슴이 따갑고 선홍색의 피를 토하게 된다. 병이 심하면 얼굴이 창백해져 죽는다고 하여 백사병(white death)라는 별명이 붙었다. 기원전 3700년 전 이집트 미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되는 결핵균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을 괴롭혔다. 인체 어느 부위에나 발생해서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결핵균은 산소를 좋아해서 폐에 잘 걸려, 약 85% 정도가 폐결핵이다. 결핵균은 기침, 콧물, 가래를 통해 전염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유대인 셀먼 왁스먼(selman Waksman, 1988~1973)은 뉴저지에 있는 러트거스 대학에서 미생물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결핵균이 다른 곳에서는 생명력이 강한데, 흙 속에서는 빨리 죽는 이유를 연구했다. 그는 흙 속에 있는 미생물이 결핵균을 죽인다고 생각하고, 토양에 서식하는 방선균(Actinomycetes)에서 결핵균에 효능 있는 물질을 찾았다. 액티노마이신(Actinomycin), 스트렙토트리신(Streptothricin)을 흙에서 분리했지만, 결핵균뿐만 아니라 동물에도 독성을 일으켜 고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왁스먼처럼 러시아 출신 유대인 앨버트 샤츠(Albert Schatz, 1922~2005)가 대학원생으로 들어왔다. 1942년 군에 입대해 마이애미병원 실험실 조교로 복무하던 샤츠는 결핵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당시 결핵은 미국에 만연한 질병이었다. 1943년 스물세 살의 샤츠는 닭의 모이주머니에서 결핵균을 죽이는 세균을 발견했다. 직접 결핵에 걸리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연구한 샤츠는 마침내 세균에서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sin)을 분리해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결핵환자에서 80% 치료율이라는 탁월한 효능이 입증되었다. 독성도 낮아 곧바로 세계 결핵환자들에게 투약되었다.
항생제 덕분에 인류는 세균이 일으키는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치명적인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인간의 역사에 비하면 아주 최근의 일이다. 항생제는 감염증을 치료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만났다. 슈퍼세균이 등장한 것이다.
슈퍼세균이란 항생제 오남용으로 세균이 내성을 갖게 되면서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할 수 없는 균을 말한다. 의학용어로는 다약제 내성세균으로 정의하고 있다. 슈퍼세균은 치료가 어렵기에 예방이 최선이다. 불필요한 항생제 복용을 피하고 손 씻기를 잘하는 등 개인위생 관리가 중요하다.
항생제는 감염증을 치료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예기치 못한
역풍을 만났다. 슈퍼세균이
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