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무구한 자연으로 대변되던 강원도는 어제. 현재의 강원도는 총 천연색 문화와 예술이 만개했다. 그 자체로 훌륭해 어느 계절이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왕이면 눈꽃 만발한 겨울이 좋겠다. 게다가 실내 공간이니 맹추위가 닥쳐도 문제없다.
글. 정은주 사진. 한국관광공사, 삼탄아트마인, 애니메이션박물관, 젊은달 와이파크
대자연 안에 웅장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게 자리한 뮤지엄 SAN. 이곳은 눈 닿는 온 사방이 산이고, 하늘이고, 예술이다. 이름의 SAN은 ‘Space, Art, Nature’를 줄여 표현한 것. 경관을 그대로 살린 오솔길을 따라가면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건물이 선물처럼 등장한다. 그의 건축의 특징 중 하나인 이곳 워터가든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데, 오직 그의 건축 작품을 보기 위한 방문객이 있을 정도다.
건물 내부에는 국내 최초의 종이박물관인 한솔종이박물관을 뿌리로 하는 페이퍼갤러리, 상설·기획 전시가 진행되는 청조갤러리가 있다. 페이퍼갤러리는 ‘종이’를 주제로 하는 곳. 개념과 역사에 관한 설명부터 국보급 문화재와 공예품 전시가 주를 이룬다. 현재 기획전시로는 사진의 실험과 사유의 새로움을 제안하는 낯선 시간의 산책자> 전이, 상설전시로는 우리나라 모더니스트 1세대 작가들의 <한국미술의 산책V : 추상화> 전이 3월 1일까지 이어진다. 전시 외에, 판화공방에서의 실크스크린, 나만의 카드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알차다.
‘빛’이라는 매체를 작업의 주연으로 끌어올린 제임스터렐관도 있다.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공간감과 빛의 착시, 그리고 환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은 그야말로 압권.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일몰 시간에 진행되는 ‘Colorful Night’에 참여하면 더욱 깊이 있는 감상과 체험이 가능하다.
워터가든에 대문처럼 서 있는 작품, 알렉산더 리버만의 「Archway」는 뮤지엄 SAN의 대표적인 포토존.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색이 주변 자연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파이프형 조각들의 리드미컬한 균형미가 특징으로, 안도 다다오의 건축 작품을 배경으로 함께 담을 수 있다.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 033-730-9000
연간 50만 톤의 굴진 암석을 처리했던 옛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사람도 돈도 풍요로웠던 시절이 지금은 화석처럼 남았다. 그리고 그 위에 예술이 근사하게 내려앉았다. 독일 졸페라인을 벤치마킹해 오래된 건물과 탄광시설을 문화예술단지로 되살린 것. 설립자가 35년간 150여 개국을 다니며 모은 미술품과 오브제가 거대한 건물 곳곳에 놓여있다.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희귀한 소장품이 많아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다반사.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과거의 탄광시설과 현재의 전시공간이 경계 없이 공존한다는 사실. 광원들의 급여대장, 건강기록표, 전표 같은 서류가 유리벽 너머에 빼곡하고, 당시 사용하던 물건이나 수십 년 전 신문이 무심하게 툭툭 놓여 있다. 덕분에 지금은 잊힌 광원들의 일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 삼척탄좌의 중심 시설이었던 조차장도 연결다리를 통해 관람 가능하도록 열려있다. 이곳에서 석탄가루가 까맣게 내려앉은 레일과 끝을 알 수 없는 수직 갱도를 바라보자면 왠지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삼탄 아트마인에는 이 외에 과거 광부들이 착용했던 헬멧과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광부체험방, 각종 공예품을 만들어볼 수 있는 예술놀이터, 아트샵, 빈티지 콘셉트의 레스토랑도 다채롭게 마련되어 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송혜교가 고문 받는 장면이 촬영된 샤워장. 독일 건축학자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것으로, 천장으로 이어진 파이프를 타고 물이 쏟아지는 구조다. 당시에는 국내 탄광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시설로 손꼽혔다.
강원 정선군 고한읍 함백산로 1445-44 / 033-591-3001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애니메이션 박물관답게 입구부터 남다르다. 친근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발랄하게 반겨주는 공간. 서는 곳곳마다 포토존이 된다. 카메라 렌즈를 형상화한 문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전시. 애니메이션의 탄생부터 발전 과정, 제작 기법과 과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자세히 보고 읽을 수 있다. 크고 작은 피규어를 감상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로봇태권브이. 천장에 닿을 듯 커다란 로봇 태권브이가 잠자고 있던 동심을 흔들어 깨운다.
애니메이션 포스터를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길은 2층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북한, 미국, 일본, 유럽 등 전 세계 캐릭터가 모두 모인 곳. 익숙한 캐릭터는 반가움에, 낯선 캐릭터는 각각의 개성 넘치는 매력에 한참을 들여다보게 된다.
중간 중간 지루할 틈 없이 설치된 체험거리들도 훌륭한데, 애니메이션 주제곡을 녹음해 들어보거나 작품과 인원수를 선택 직접 더빙을 해볼 수도 있다. 또한 파도소리, 발자국소리 등 만화에 나오는 효과음들을 제작하는 체험도 이색적이다. 한마디로 만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간단하게나마 두루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며져 어른과 아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
애니메이션 박물관 바로 옆에 토이 로봇관이 있다. 대화 로봇과 안부를 나누고, 로봇을 조종해 축구와 권투 경기를 펼치며, 애니메이션 주제곡에 맞춰 춤추는 로봇을 관람할 수도 있는 공간. 전시된 다양한 로봇을 통해 우리나라 로봇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볼 수 있다.
강원 춘천시 서면 박사로 854 / 033-245-6470
조용하던 영월을 들썩이게 만든 복합예술공간이다. 강릉 하슬라아트월드를 디자인한 최옥영 대지미술가의 두 번째 작품. 입구의 ‘붉은 대나무’는 한 번 보면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 영월의 자연의 색인 녹색과 대비되는 붉은색을 써 넘치는 에너지와 우주를 표현했는데, 하늘로 솟은 금속파이프 사이를 지날 때면 마치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어 나타나는 카페이자 매표 공간을 넘어서면 본격적인 미술관이다. 온몸으로 작가의 철학과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것이 이곳 작품들의 특징. 거칠게 쪼갠 소나무 장작을 엮고 쌓아올려 분화구처럼 만든 ‘목성’ 안에 들어서면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에 발을 들인 느낌이다. 그리고 고개를 들면 강원도의 하늘이 한 뼘 쯤 보인다.
붉은 파빌리온으로 이름 붙여진 공간은 젊은달 와이파크의 랜드마크 같은 곳. 폐타이어와 공사 후 남은 부자재를 활용한 작품, 붉은색과 대비되어 그 자체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푸른색 사슴 등이 예기치 않은 곳에 놓여 있다. 일부 작품은 야외에 있어 전체를 관람하려면 추위를 견뎌야하지만 안 보고 가기엔 아쉬울 정도. 때마침 눈이라도 소복이 쌓여 있다면, 그마저 작품이 될 테다.
‘목성’ 작품에서 별밤 별보기, 힐링 명상 이벤트를 진행한다. 요가매트에서 스트레칭을 하면서 영월의 밤하늘을 감상하는 것. 야간에 이루어지는 이벤트이므로 전화 예약이 필수다. 붉은 파빌리온 가장 높은 곳에 설치된 ‘Spider web’도 별도 비용을 지불하면 그물망 위를 걸을 수 있다.
강원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1467-9/ 033-372-9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