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한 명의 아이가 자라는 데 그만큼 많은 손이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예린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 예린이를 위해 일산병원 사람들이 양 팔을 걷어붙이고, 온 힘을 모으고 있다. 일산병원 안에서 예린이는 누구 한 사람의 아이가 아닌 모두의 아이다.
글. 이성미 사진. 이서연(AZA 스튜디오)
예린이는 잘 웃는다. 달리기도 잘하고, 달려와 안기기도 잘한다. “엄마”라는 말도, 손을 들어 머리 위로 하트를 만드는 것도 잘한다. 잘하는 게 많은 예린이의 나이는 10살. 하지만 예린이의 키는 117cm로 또래 평균보다 10cm 이상 작다.
“예린이를 처음 만난 건 다운증후군으로 인한 갑상선 기능 저하 때문이었습니다. 2년 전 예린이가 영유아 거주시설에서 중증장애인 거주시설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시설 인근에 있는 일산병원으로 병원을 옮기게 된 거죠. 처음 내원할 당시는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낮아서 그런지 활력이 없었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왜소했고요. 다행히 상태가 호전되면서 활발해졌지만, 여전히 성장이 염려되어 검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정인혁 교수는 유독 작고 소극적인 예린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예린이는 지금보다도 더 어린 나이에 선천성 심장판막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바 있었고, 갑상선 기능 저하로 정기적인 검진이 필요했다. 또 성장 호르몬 결핍으로 하루라도 빨리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애 수당만으로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그래서 정인혁 교수는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에 도움을 청했다.
“예린이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에서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재단과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의 도움으로 예린이는 앞으로 성장에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단과 일산병원
공공의료사업팀의 도움으로
예린이는 앞으로
성장에 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인혁 교수는 예린이가 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 모든 공을 일산병원에 돌린다. 그러나 분명 이번 지원은 환자에 대한 정인혁 교수의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된 일이다. 정인혁 교수는 대학생 시절부터 장애아동 거주시설에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등 봉사활동을 계속해왔다. 평소 내원하는 장애아동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이처럼 사랑이 많은 의료진을 만난 덕분에 예린이는 치료 시기를 놓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해밀중증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예린이의 건강을 보살피고 있는 시설 간호사는 예린이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가 ‘웃음’이라고 말한다.
“예린이가 밝아지고 건강해지는 게 제 눈에 보여요. 정인혁 교수님을 비롯한 선생님들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예린이도 느껴지나 봐요. 그리고 선생님들을 믿나 봐요. 그래서 예린이가 웃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시설 직원들과 정인혁 교수, 그리고 일산병원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덕에 예린이는 변하고 있다. 또 자라고 있다. 무엇보다 심하게 낯을 가리느라 낯선 사람만 보면 바닥에 엎드리던 아이가 이제는 당당히 고개를 들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예린이를 바라보며, 정인혁 교수는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장애와 상관없이 아이는 정상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몸이 크는 것에 맞게 내장 기관도 함께 자라야 하고요.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도 여전히 재정적으로 한계는 있어요. 하지만 예린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보려 합니다. 그러니 예린이가 일산병원의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이렇게 만나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게 해주어 정말 고맙고요. 제가 예린이에게 고마워요.”
정인혁 교수의 말처럼, 예린이는 앞으로도 일산병원이라는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 놓고 자라날 것이다.
현재 예린이는 일주일에 여섯 번씩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고 있다. 주사를 맞아도 울지 않는 씩씩한 예린이를 보며 시설 직원들은 조금이나마 근심을 놓는다. 예린이 외에도 시설에 거주하는 중증장애인들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많아, 시설 간호사는 일산병원 소아청소년과는 물론 정형외과, 정신과, 암 병동 등을 매일 오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반갑게 환자를 맞이하고 보살펴주는 일산병원 사람들이 고맙다.
“다행히 시설과 가까운 곳에 일산병원이 있어서, 필요할 땐 언제든 찾아와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평소 교수님과 간호사, 원무팀 직원들까지 저희를 친절히 맞아주고 또 보살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재활의학과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정형외과에서 1년에 한 번 시설을 찾아와 방문 진료를 해주시고요.”
예린이를 비롯한 중증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바람은 한 가지다. 그들이 오늘보다 내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몸뿐만 아니라 행복도 덩달아 자라는 것이다. 다만 시설에서 한 가지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장애인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 정확히 아픈 부분을 집어내거나 아픈 정도를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저희가 세심하게 관찰하여 증상을 발견한다고 해도, 병원에서 정밀하게 검사를 받아야 아픈 곳을 알 수 있죠. 그럴 때마다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항목들이 존재하다보니 비용이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따라서 장애인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이웃이란 내 집 앞에 사는 사람만이 아닌, 세계인 모두를 나의 이웃이라고 말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이제 한 마을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편견 없이, 차별 없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필요하다. 더 큰 사랑이 모여 예린이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바란다.
예린이가 일산병원의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이렇게 만나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게
해주어 너무 고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