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채식주의가 극단적인 식습관의 하나로 간주돼 건강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요즘은 다양한 분야와 장소에서 채식주의 현상이 목격된다. 기내식에는 채식주의자 메뉴가 따로 제공되고, 채식주의자용 가짜 고기까지 등장했다. 세계적인 문학상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는 ‘고기를 절대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딸과 기어이 고기를 먹이고야 말겠다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글. 박태균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대표, 전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채식주의의 뿌리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살생(殺生)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상 석가모니는 채식주의자였을 터다. 동물권리단체인 PETA는 ‘예수는 채식주의자’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소크라테스, 플래톤, 아리스토텔레스, 버나드 쇼도 채식주의자 저명인사다. 불교승려, 안식일 재림파 교인, 가톨릭의 트라피스트 수도사 등 종교적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된 사람도 있다. 채식주의자(Vegetarian)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채식주의자 중에서는 우유와 계란까지 먹는 ‘락토–오보’(Lacto–ovo)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성 식품은 일절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가 ‘베간’(Vegan)이다.
물론 채식주의자도 단백질을 부족하지 않게 섭취할 수 있다. 한국인의 단백질 섭취량은 이미 하루 권장량을 넘어선 상태다. 채식주의자도 마찬가지다. 육류·계란에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지만 콩, 채소, 과일, 통곡, 씨앗류, 견과류 등 식물성 식품에도 단백질이 상당량 들어 있다. 하지만 단백질의 질(質)에선 분명 동물성 단백질이 더 우수하다. 따라서 동물성 단백질과 식물성 단백질을 함께 먹어야 영양적으로 ‘완벽한’ 단백질 섭취가 된다.
한국인이 가장 부족하게 섭취하는 영양소인 칼슘이 풍부한 식품은 우유·요구르트·치즈 등 유제품이다. 우유나 계란까지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라면 칼슘 섭취에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베간’에겐 칼슘 부족이 심각해질 수 있다. 이들에겐 칼슘 보충제 복용이 필요하다. 칼슘은 시금치, 브로콜리, 켈프 등 녹색 채소, 콩, 두유, 된장, 청국장 등에도 들어 있지만 흡수율은 우유 등 동물성 식품에 비해 떨어진다.
채식만으로는 충분히 섭취하기 힘든 미네랄론 칼슘 외에 철분과 아연도 있다. 철분이 부족하면 철 결핍성 빈혈에 걸리기 쉽다. 아연은 면역력을 강화하고 성장을 돕는다. 철분은 시금치, 브로콜리, 콩, 마른 과일 등 일부 식물성 식품에도 들어있지만 체내 흡수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일부 식물에 함유된 피트산·옥살산(수산) 등은 철분의 흡수를 방해한다. 빈혈이 많은 젊은 여성 채식주의자에게 철분제 복용을 권하는 것은 그래서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 적색육에 든 철분의 흡수율은 20%에 달한다.
아연도 통밀·현미 등 전곡(全穀)과 콩·견과류 등 일부 식물성 식품에 들어 있다.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굴·생선 등 동물성 식품에 든 아연에 비해 흡수율이 낮다.
오직 동물성 식품에만 존재하는 영양소가 두 가지 있다. 콜레스테롤과 비타민 B12이다. 완고한 채식주의자(베간)라면 이 두 영양소의 섭취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콜레스테롤은 문제가 안 된다. 식품으로 섭취하지 않아도 몸에서 콜레스테롤이 자체 생산되기 때문이다.
비타민 B12는 엽산과 함께 헤모글로빈 합성을 도와 정상적인 적혈구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비타민이다. 결핍되면 악성 빈혈에 걸리기 쉽다. 신경계나 소화기관도 손상을 입는다. 계란이나 우유, 치즈까지 먹는 채식주의자라면 비타민 B12을 따로 섭취할 필요가 없다. 이 비타민이 우유·계란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베간’에겐 비타민 B12 보충이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임산부나 모유를 먹이는 산모는 필히 이 비타민을 챙겨야 한다. 섭취를 소홀히 하면 아기의 신경 발달이 지연되거나 정신 기능이 손상될 수 있다.
육식이 심장병·신장질환·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속설을 살펴보자.
육식을 주로 하는 아프리카 마사이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이들의 심장병 등 성인병 발생 위험이 특별히 더 높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생선 등 바다생물이 주식인 이누잇족(에스키모)의 심장병 발생률은 서구인보다 훨씬 낮다. 이들이 즐겨 먹는 생선 지방이 혈관 건강에 이로운 불포화 지방이기 때문이다. 채식주의자의 당뇨병·심장병·일부 암등 성인병 유병률이 육식을 즐기는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제시됐다. 이는 육식과 채식의 차이라기보다는 채식주의자가 헬스 프렌들리(Health friendly)한 생활습관을 지닐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일 수 있다.
육식을 하면서 죄의식을 느낀다고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건강유지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육식을 무조건 금기시하는 것은 득(得)보다 실(失)이 훨씬 많다. 생활환경·기후·종교적으로 보아 한반도에서 육식을 식탁에서 완전 배제해야 할 이유는 찾기 힘들다. 평균적인 한국인은 현재 채식과 육식의 비(比)가 8대 2인 황금비율의 식사를 하고 있다. 이 비율에서 벗어나 육식 점유율이 3 이상인 사람만 정상궤도로 돌아오면 족하다. 한쪽 날개로 가는 비행기는 없다. 식물성과 동물성 식품을 8대 2의 비율로 섭취하는 것은 최상의 식사법이다.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동물성 식품 = 독, 식물성 식품=약’이란 단순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채식과 육식 중 무엇이 건강에 더 좋은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물론 모든 식품군을 골고루 먹는 것이 최고겠지만 채식이든 육식이든 개인의 취향과 입맛으로 결정된 모든 식단은 존중받아야 한다. 채식주의와 육식주의에 관한 눈에 띄는 정보를 모아봤다.
자료. 편집실
한국인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아시아 1위)
51.3 kg24.4kg
15.4kg
11.6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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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육류 소비 순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
연간 1인당 육류 소비량 국가 순위
국내 채식 인구
약100만~150만 명
*출처 <한국채식연합>글로벌 채식 인구
약1억 8,000만 명
*출처 <국제채식인연맹>장점 |
• 노폐물 배출 용이 • 미네랄과 항산화 물질 풍부 • 비만 및 성인병 위험 낮춤 |
• 특유의 맛과 풍미 • 열량 높고 포만감 유지 • 필수아미노산 풍부 |
단점 | • 영양 불균형 및 결핍 | • 비만 발생 위험 |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 |
• 단백질·철분·비타민B12·칼슘 등 | • 섬유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