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 43년(1717년) 숙종은 온양온천으로 행궁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온양에 도착한 이튿날에 내일 있을 온천욕의 절차를 논의하였다는 사실만 나오지만, <승정원일기>에는 그 논의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논의 과정을 살펴보며 조선왕조에서 온천욕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아보자.
정리. 편집실 참고도서. 역사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 조선왕조 건강실록
숙종 43년(1717년) 3월 3일 서울을 떠난 숙종은 3월 8일, 엿새 만에 온양에 도착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쉬엄쉬엄 내려왔지만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온천욕을 시작하기 전 숙종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차 있었다. 신하를 시켜 선왕이 온천욕을 했던 방법을 잘 알아오도록 했다. 온천욕이 숙종의 고단한 몸에 치유와 휴식을 줄 것만 같았다. 내일 있을 온천욕의 절차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내의원을 총괄하는 도제조 김창집이 숙종의 안위를 거듭 물었다. 숙종은 스스로 다리의 관절통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고 눈병으로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온천 우물의 상태와 선왕의 온천욕 방법에 대하여 논의했다. 도제조 김창집은 아침 일찍 탕정에 갔다 온 이야기를 하였다. 문을 열자 훈기가 있었고, 욕실에 들어가 앉아서 물에 손을 담그자 땀이 몸을 적셨다고 보고했다. 또한 온천욕 후에 효과를 볼지 안 볼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영험한 온천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여 말했다.
숙종도 온양에 도착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탕정에 잠깐 들러본 터였다. 숙종은 온양 온천수에 대체적으로 만족하였고 선왕의 예에 따라 온천욕 하기를 원했다.
온천욕 후에 들일 식음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먼저 내의원 부책임자인 제조 민진후가 목욕 후에 차좁쌀미음을 드셔야 하지만 맛이 좋지 못한 듯하니 멥쌀미음을 드시는 것이 좋다고 아뢰었다. 또한 숙종은 목욕 후에 국 같은 것을 먹고자 하니 수라간에 미역국을 준비하라 일렀다. 숙종의 주치의들은 임금의 몸 상태를 체크하고 주의사항을 아뢰었다. 온천욕에 조예가 깊었던 전담의관 이중번이 임금에게 주의사항을 아뢰었다. 목욕 방법은 먼저 손을 씻고 그 다음 발을 씻은 연후에 머리를 들고 자리에 앉는 게 좋다고 하였다. 머리를 구부리면 열이 오르기 때문이었다. 귓구멍은 솜으로 단단히 막고 수건으로 가려서 물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조 민진후가 온천욕의 일정과 수행원의 이름을 한 번 말하였다. “내일이 길일이나 사시(오전 9시~11시)에 목욕하고, 어의 중의 최고 책임자인 수의와 전담의 이중번이 함께 입시하도록 하겠다.” 이것으로 이날의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예만 보더라도 조선왕조에서 온천욕을 얼마나 신뢰하고 신중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목욕 후에는 기운이 허해지고 피곤하므로 약이나 음식으로 보충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온천수에서는 특유의 유황냄새가 나는데 이 유황 성분 덕분에 관절 병과 몸이 차서 생기는 냉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다고 한다.
조선 초기 태조, 정종, 태종은 주로 황해도 평산온천을 이용하였다. 세종은 강원도 이천온천을 1번, 충청도 온양온천을 3번 다녔다. 세조, 현종, 숙종, 영조도 온양온천을 다녔다. 광해군과 사도세자는 왕세자의 신분으로 혼자서 온양온천을 다녀왔다. 문종 또한 왕세자 시절 부왕인 세종을 따라 온양온천을 다녀왔다. 세종 이후 조선의 왕들은 주로 온양으로 온천욕을 다녔다. 보통 20일 정도 머물렀으며 오고가는 일 수를 더하면 한 달을 소요하는 여정이었다. 본인은 물론 왕족을 대동하기도 하고 때때로 대신들에게 온천욕을 허락하기도 하였다.
<동의보감>에서는 물을 3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특별히 온천수를 여러 가지 풍병으로 근육과 뼈마디가 당기고 오그라드는 것과 피부의 감각이 없어지고 손발을 잘 쓰지 못하는 병, 문둥병, 그리고 옴이 있을 때 효과가 좋다고 설명한다. 목욕 후에는 기운이 허해지고 피곤하므로 약이나 음식으로 보충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온천수에서는 특유의 유황냄새가 나는데 이 유황 성분 덕분에 관절 병과 몸이 차서 생기는 냉병을 치료하는 데 아주 좋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들의 온천욕과 관계되는 질환은 풍병, 눈병, 피부병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풍병은 뇌혈관계 질환인 중풍이 아니라 팔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관절 질환을 말한다.
현종과 숙종은 온천욕으로 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할지라도 도성을 떠나 잠시 정사를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곤 했다. 반신욕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데, 실은 조선 왕실에서도 이렇게 반신욕을 했다. 더군다나 아무렇게나 했던 것이 아니라 절차에 따르고 자신의 몸 상태에 따른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반신욕을 했다.
임금의 건강이 왕실의 건강이요 나라의 건강이니만큼 이렇게 목욕 하나에도 세세함을 기울였던 것이다. 궁궐 안에서 100바가지를 부으며 반신욕을 할 수도 있었겠으나 굳이 온천을 찾았던 이유는 조용한 장소, 건강에 좋은 물, 마음의 휴식을 두루 갖추기 위해서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