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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상상력과
천재의 성장, 피카소

“모든 어린이는 예술가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커서도 예술가로 남을 수 있게 하느냐이다.”
어른이 되면서 어린 시절의 재능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이 잃어버린 재능을 아이들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했던 천재들도 있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처럼 피카소 역사 환경과 전통을 극복하며 재능을 꽃피운 천재로 알려져 있다.

글·사진. 최병진(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 교수,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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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워있는 누드와 기타 치는 남자>
1970, 캔버스에 유화, 130x195cm, 피카소 박물관, 파리.
이 작품은 젊은 시절 큐비즘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이야기를 노년에 그린 것으로 어린아이처럼 주관적인 감정이 담긴 간결한 선과 색의 대조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달하고 있다.
2. <과학과 자비>
1897, 캔버스에 유화, 197x249cm,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
무감각하게 환자를 치료하는 과학자로서의 의사와 환자를 바라보는 수녀와 아이의 따듯하고 인간적인 감정은 차갑고 따듯한 배경과 빛의 배치를 통해 강조된다. 이 작품은 인간의 치료와 치유 사이, 과학과 자비 사이의 긴장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과학을 바라보는 피카소의 생각이 담겨있다.
© Succession Picasso, by SIA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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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게르니카>
1937, 캔버스에 유화, 351×782 cm, 레이나 소피아 국립 중앙 미술관, 마드리드.
양감이 배제되어 환영처럼 분리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들의 형상과 흰색, 검정, 회색이 만드는 죽음에 대한 차가운 감정을 통해 피카소는 그가 겪은 전쟁의 참상을 상징적이고 선언적으로 표현하기를 원했다. 그가 본 장면들이 생각 속에서 다시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회화적 평면에 중첩되고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면서 그는 자신의 미술 세계를 열어갔다.
4. <자화상>
종이에 목탄과 백연. 225x165mm, 피카소 박물관, 바르셀로나.
1970년 화가의 기증 © Succession Picasso, by SIAE 2015.
어린 시절 그의 작품은 아카데미의 전통에서 가르치던 표현 방법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영재 교육을 받으며 미술에 대한 전통적인 표현 기법들을 배웠다. 그는 ‘엄마’, ‘아빠’라는 말 다음에 ‘연필’을 말했을 정도로 미술에 대한 관심과 재능이 남달랐다. 하지만 피카소는 미술과는 달리 문자와 수를 배우는 것을 무척 어려워하는 난독증과 유사한 증상을 겪었다. 다행히 그의 선생님은 비치는 종이 뒷면에 좌우를 바꾼 글씨를 따라 쓰게 하면서 피카소에게 문자와 수를 가르쳐주었다. 당시 그의 화려한 미술솜씨를 볼 수 있는 캐리커처 <자화상>에 비하면 문자는 매우 힘겹게 읽고 쓰는 것을 배운 셈이다.
그는 ‘라파엘로’처럼 아카데미의 관점에서 뛰어난 작품을 그려냈고, 피카소의 아버지가 그림을 포기하고 모든 화구를 넘겨줄 정도로 어른의 관점에서 완성도 있는 작품을 그려냈다. 이후 아버지가 바르셀로나에서 일하게 되면서 그는 바르셀로나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했고 이곳에서 다른 학생들이 한 달 내내 준비하는 과제를 하루 만에 그려 시험을 통과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화보다도 화가로서 피카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그가 바르셀로나에서 건축가 가우디가 남긴 상상 가득한 건축물을 만나 미술적 자극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독립적인 화실을 만들어주었고, 그는 점차 자신만의 다양한 생각들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피카소의 <과학과 자비>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 중 하나였다. 이 그림은 리얼리즘적 화풍을 지니지만 진료에 집중하는 차가운 과학자와 수녀의 따뜻한 모습을 통해 과학과 인간적 삶의 가치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지금도 남아있는 바르셀로나의 ‘네 마리 고양이’ 식당에서 무정부주의자들과 미술 애호가, 음악가, 문학 작가와 같은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유로운 문화를 즐기던 중 피카소는 당시 문화적 중심지인 파리로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파리에서 그는 사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나눠서 그리거나 겹쳐서 그리는 ‘큐비즘’을 실험했다. 실제 본 것을 나눠서 하나의 표면에 펼쳐내면서 그림의 공간은 더이상 현실에서 만날 수 없는 공간으로 변한다. 피카소의 주관적 생각의 판타지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노년에도 피카소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다. 그는 아이들이 사물을 보는 방법, 자유로운 창조성과 판타지를 이해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미술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어른이 되면서 잊었던 것을 어른으로서 인정받고 다시 찾으며 자신의 천재성을 펼친 미술가로서 피카소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의 성장기 속에서 자신만의 답을 찾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