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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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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은 어떻게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됐을까

지금 우리에게 힙합은 어떤 의미인가. 아마도 그것은 그 본고장인 미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힙합이라는 낯선 장르는 이제 어느덧 우리 속 깊숙이 들어와 우리 식의 정서들을 갖게 됐으니 말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힙합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장이 되었다.

글. 정덕현   일러스트.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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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해방 혹은 저항 그리고 스웨그

청소년들이 힙합에 더 깊숙이 빠져드는 이유는 그것이 갖고 있는 억압에 대한 해방 혹은 저항적 성격 때문이다.
힙합은 본래 뉴욕 할렘가에 사는 흑인이나 남미계 청소년들 사이에서 생겨난 문화운동이었다. 빠른 비트의 리듬 위에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랩과 브레이크 댄스 같은 특유의 댄스가 결합된 음악적 장르.
이렇게 조금씩 저변이 만들어졌던 힙합은 1990년대 들어 전세계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자리잡았다.
거기에는 이른바 어른들의 기성사회가 가진 모순과, 그래서 겪게 되는 청소년들의 어려운 현실이 투영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우리네 청소년들이 힙합을 그들의 스타일로 받아들이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그 저변을 보편적으로 확대시킨 건 <쇼 미 더 머니> 같은 힙합 오디션의 영향이 크다. 이 프로그램이 보여준 대중성으로 인해, 마니아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힙합이 누구나 접근하고 소비할 수 있는 장르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기반을 들여다보면 억압적인 사회분위기 속에서 그것을 뛰어넘고 저항하는 목소리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입시교육의 틈바구니에서 숨 막혀하던 청소년들은 힙합이라는 장르를 빌어 비로소 작은 숨통을 열 수 있었다는 것.
게다가 힙합 특유의 스웨그 문화는 기존의 도덕과 윤리를 내세우는 권위주의적 획일성을 깨는 데 일조했다. 스웨그 문화는 자신의 개성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때론 과시하는 문화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힙합 프로그램 <고등래퍼> 우승자인 양홍원의 곡 <아침에>에서 드러나듯, 어떤 사회가 내세우는 기준과 기본의 틀을 거부하고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그 문화는 획일적인 것을 요구하는 기성사회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힘을 갖게 됐다.
개성을 통한 다양성 문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스웨그 문화는 현 우리 사회의 경직성을 깨는 데에도 일조하고 있다.

청소년들의 언어 문법이 된 리스펙트와 디스

이제 힙합이 대중화되었다는 건 음원차트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무수한 차트의 음원들에는 마치 힙합이 들어가는 것이 하나의 필수적인 일처럼 되어 있다. 힙합 오디션을 통해 나온 도끼나 비와이, 지코 같은 래퍼는 음원을 발표하면 곧바로 차트에 진입하는 스타 래퍼로 자리했고, 이들을 피처링으로 참여시키는 건 최근 가요의 트렌드처럼 되었다. 하지만 혹자들은 힙합이 가진 ‘거친 면들(?)’ 이를 테면 디스 문화 같은 것들을 들어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힙합의 디스 문화가 가진 속내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데서 나온 기우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에서 나온 말로 리스펙트(respect)와 떼놓고 말할 수 없는 힙합 문화의 하나다. 즉 디스는 그저 타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물론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활용되는 디스도 존재하지만).
리스펙트가 뜻하는 건 존중과 존경의 의미를 뜻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지나친 권위 세우기의 하나로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리스펙트가 과도해지면 힙합계는 그 균형을 찾아서 디스가 이뤄지기도 한다. 반면 디스는 힙합의 고유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저항의 의미를 담는다. 하지만 이 역시 과도해져 인신 공격으로 흐르게 되면 리스펙트가 고개를 든다. 그렇게 디스와 리스펙트는 권위를 얘기함에 있어서 어떤 한 쪽으로 과도해지는 것을 막는 힙합의 균형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리스펙트와 디스는 상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보적 개념으로서 존중과 존경을 표현하면서도 그것이 권위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는 청소년들의 새로운 언어문법이 되고 있다.
힙합은 이미 우리네 청소년들에게도 새로운 스타일이자 그들의 언어문법을 담아내는 문화로 자리했다. 그리고 그 문화의 저변은 청소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과 중장년 심지어 노년(<힙합의 민족>의 할미넴 같은)까지 확장되어가고 있다. 청년들의 문화가 가진 긍정성이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저변으로 넓혀지게 됐다는 것. 힙합은 그렇게 이제 모든 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