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기근을 피해 국경을 넘었고 22년간 중국에서 머물며 생계를 유지했다. 열심히 살았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희망을 품고 한국행을 택했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병을 발견했다. 일산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으며 진정한 ‘사람대접’이 무엇인지 느꼈다. 그렇게 김명옥 씨는 한국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글. 정라희 사진. 현진(AZA 스튜디오)
한반도가 남과 북으로 나뉜 지도 수십 년이 흘렀다. 민족의 개념이 희미해지고 세계화가 진행되는 요즘이지만, 오랜 세월 같은 문화와 같은 언어를 공유하며 지내온 한민족의 교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국경을 넘어 한국행을 선택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있다. 그녀 역시 노년의 안식을 찾아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위해 받은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나왔다. 좀 더 큰 병원에서 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에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을 찾았다. 지난 2018년 1월 24일, 일산병원과 남북하나재단은 공공의료체계사업 내에서 북한이탈주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상호 협력하는 업무협약을 맺은 바 있다. 협약체결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치료를 받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 공공의료사업팀 의료사회복지사는 면담을 통해 치료비 지원을 하고 있으며 덕분에 명옥 씨는 일산병원에서 바로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자궁경부질환은 한국에서는 백신이 널리 보급되고 검진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질환에 속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환자가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검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김명옥 씨 역시 과거에 ‘0기암’으로 불렀던 제자리암 상태였어요. 보통 이런 경우 수술을 하지 않고 원주절제술이라고 하는 간단한 시술만으로도 치료를 마치기도 하는데요. 병변이 조금 많이 남아 있는 상태여서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산부인과 이인옥 교수가 그녀의 치료 경과를 간략하게 전했다. 수술을 하기는 했지만 그리 어렵거나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는 전언. 더불어 수술 경과도 좋아 이제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며 건강관리를 하면 된다는 희망 어린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제 부인과 질환에 대해서는 거의 걱정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수술로 자궁경부는 절제했지만, 자궁경부와 연결되어 있던 질에도 이상이 생길 작은 가능성이 있으니 검진을 꾸준히 받으시는 게 좋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그 외에 건강관리도 꾸준히 하시기를 당부드려요.”
자궁경부질환은
한국에서는 백신이 널리
보급되고 검진이 매우 잘
되어 있는 질환에 속합니다.
그래서 대다수 환자가
암으로 발전하기 전에
검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67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일은 고통이었다. 저녁 6시부터 아침 6시까지 매일 열두 시간을 험준산령을 넘으며 겨우겨우 찾아온 한국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때가 지난 3월. 북한이탈주민의 자립정착과 통일 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에서 운영하는 하나원에서 머물며 한국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쳤다. 건강검진을 통해 자궁경부에 이상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평생 고생만 하더니 이런 병이 생겼구나’ 싶은 생각에 잠시 마음이 가라앉기도 했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병을 발견하고 보니 중국에 그대로 있었으면 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병을 키웠을 거에요. 수술을 받으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때이구나 하고 느꼈지요.”
그때가 6월 21일. 진단부터 수술, 치료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빠르고 순조로웠다. 아직 한국에 다 적응하기도 전에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니 처음에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번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친절하게 치료 경과를 설명해주는 이인옥 교수와 입원 기간 동안 진심으로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들의 정성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고.
“지금 사는 김포에 있는 병원에서 처음 진단을 받고 더 큰 병원으로 가보는 게 좋겠다고 해서 일산병원으로 왔습니다. 주변에서 일산병원이 큰 병원이라고, 좋은 병원이라고 해서 왔지요. 일산병원에 와서 한국 사람들의 봉사성이 얼마나 뛰어난지 실감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사람대접이라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느꼈어요. 아픈 사람을 간호하는 게 쉽지 않을텐데 항상 상냥한 목소리로 대해주었죠.”
수술을 갓 받았을 때는 정신이 없어 이인옥 교수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 했다는 명옥 씨. 그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려 이번에 병원을 찾으면 반드시 감사하다는 말을 먼저 하겠다고 다짐을 했단다.
“퇴원할 때 선생님을 만나서 얼굴을 보고 꼭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그때 못했던 말을 이번에는 전하려고 단단히 마음먹고 왔습니다.”
수술을 받고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고마운 마음은 퇴색되지 않았다. 그녀는 진료실에서 이인옥 교수를 만나자마자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하며 그동안 궁금했던 점도 질문하며 한 차례 더 진료를 받았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이지만, 아무래도 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아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할 터. 그렇기에 이인옥 교수는 앞으로도 그녀의 오래도록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명옥 씨는 이제 정기 검진을 통해 꾸준히 경과를 살피기만 하면 된다. 수술 후 석 달 만에 받은 이번 검진 결과가 좋으면 다음에는 6개월 후에 병원을 찾아 한 차례 더 검사를 받을 예정이다.
“감사하게도 한국에 와서 먹고 입을 걱정은 덜었지요. 아직은 적응하는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속을 터놓고 지낼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싶습니다.”
아직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지금 한국에는 국경을 넘어 우리네 일상과 함께하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있다. ‘미리 온 통일’로 불리는 이들은 언젠가 찾아올 통일 시대에 남과 북을 연결하는 가교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일산병원의 돌봄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어주길 기대한다.
감사하게도 한국에
와서 먹고 입을 걱정은
덜었지요. 아직은 적응하는
단계이지만, 언젠가는 속을
터놓고 지낼 좋은 친구들도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