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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바람처럼 자유로운
20세기 음유시인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세상을 발칵 뒤집히게 한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이 수상 강연에서 한 말이다. 데뷔 이래 음악을 통해 ‘반전’, ‘평화’, ‘평등’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해온 밥 딜런. 그의 노래는 세계인의 마음에 특별한 울림을 주는 20세기의 시였다.
글. 신지선
밥 딜런은 1941년 5월 24일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러시아계 유태인 혈통으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다. 그는 10대 때부터 시와 문학과 음악에 심취해 있었다.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하여 문학을 전공하지만 1년 후 바로 자퇴하고 거리에서 버스킹을 시작한다. 하모니카를 들고 기타를 둘러맨 채 거리에 선 밥 딜런은 그때부터 세상을 향해 자기의 이야기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음악계의 거물급 매니저 존 해먼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와 손잡고 1962년 첫 앨범, 그리고 1963년 ‘The Freewheeling’를 연속해서 발매한 것이다. 두 음반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젊음의 표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신인 밥 딜런을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두면서.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가야 진정한 남자라고 불릴 수 있을까…(중략)…. 얼마나 많은 대포알이 날아야 영원히 포탄이 금지될까. 그 답은 친구여 바람에 실려 불어온다네, 그 답은 바람에 실려 불어오고 있어’ 두 번째 음반에 수록된 Blowing in the wind의 가사는 당시 반전운동의 상징이 되었고 파격적 지성의 산물로 여겨졌다. 그뿐 아니다. 그의 노래 가사에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비틀즈의 등장, 케네디 암살 사건, 베트남 전쟁, 히피문화 등 급격한 사회변화가 있었던 시기. 그는 뒷짐지고 모른체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참여적 메시지를 냈다. 대중들은 그런 그에게 열광했다.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루터킹 목사의 집회에 참여하여 노래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이후 밥 딜런의 노래들은 각종 시위현장에서 송가로 불려지게 된다.
그러나 그가 계속 사회 참여적 메시지만을 낸 것은 아니다. 음악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파격은 계속되었다. 1965년 어쿠스틱 기타 대신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포크음악을 지지하던 팬들은 ‘배신자’라며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가기 위해 그런 비난들을 기꺼이 감수했다. 밥 딜런의 진화에 대한 가치관과 의지는 ‘Mr.Tambourine Man’, ‘Like a Rolling stone’ 등에서도 발견된다.
매일 밤 성공한 노래만을 몇 시간씩 불러대야 하는 포크가수의 삶을 온몸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후에도 밥딜런은 포크와 록을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시도했다. ‘knocking on heaven's door’같은 명곡을 발표하기도 했고 70년대 후반에는 종교에 심취하여 가스펠을 노래하기도 했다.
밥 딜런의 위상을 높게 평가한 것은 음악계뿐만이 아니었다. 전성기에는 미국 각 대학 영문과에 ‘밥 딜런 시 분석’ 강좌가 연이어 개설되기도 했다. 당대의 문학가들에게 그의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다.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도 선정되고 2016년에는 수많은 인기 작가를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다방면에서 20세기를 담아낸 그의 가사가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20세기를 온 몸으로 살아내며 세상을 노래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쓰던 아티스트였다. 그래서일까? 밥 딜런의 노래를 들으면 20세기가 그대로 살아 돌아오는 것만 같다. 타인의 평가에도 시대의 어둠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노래한 밥 딜런. 그의 앞으로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누구도 예측할 수 없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그는 바람처럼 자유로울 것이라는 것이다. 살아온 인생처럼. 노래한 가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