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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 Story
따스한 인사
아내로부터 신장을 이식받은 김석추 씨
매일매일 행복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신장은 우리네 아버지를 닮았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해내며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버지처럼, 하루에 180리터나 되는 피를 걸러 정화시키는 신장은 그 수고로움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뭔가 증상을 느꼈을 때는 중증질환에 이른 경우가 허다하다.
성실한 직장인이자 가장으로 중년의 삶을 살아온 김석추 씨는 우연히 신장이상을 발견했다.
글. 박현숙 사진. 이서연(아자 스튜디오)
“10여 년 전, 우연히 초음파 검사를 하고 제 신장이 다낭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혈압도 정상이었고 평소 건강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의아했죠. 그런데 이 시점부터 체중도 불고 혈압이 높아져서 혈압약을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다낭신(多囊腎)이란 양쪽 신장에 수많은 물혹이 생기는 질환으로 커진 물혹이 신장조직을 눌러 결국 신장기능을 망가뜨린다. 대부분 뚜렷한 증상이 없어서 조기발견이 쉽지 않다. 50대 초반이던 2011년 가을, 그간 잘 관리되는가 싶던 김석추 씨의 신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만성신부전이 되어 고열과 빈혈이 지속됐으며 체중이 줄고 안색이 검게 변했다.
아내의 신장을 이식받다
신장은 한번 망가지면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완벽하게 낫기가 어렵다. 환자가 말기 신부전증에 이르면 투석을 해야 하고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신장이식이다.
“신장수치가 높아지면서 삶의 질이 뚝 떨어졌습니다. 제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이식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신장이 이식에 적합하지 않으면 두 아들도 차례로 신장을 주겠다고 했죠. 선뜻 신장을 주겠다고 한 아내와 아들들의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왔어요. 검사결과 아내의 신장이 적합판정을 받아 이식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신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김석추 씨가 선택한 곳은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이었다. 신장내과 신석균 교수, 이식외과 이형순 교수를 비롯한 간호사, 코디네이터들에 대한 신뢰가 컸다. 더불어 수술 후 1인실을 사용해야 하는데 병원에서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제공되니 비용부담을 덜면서 수준 높은 병원 서비스를 받는다는 장점도 좋았다. 김석추 씨는 아내의 신장 검사결과가 적합으로 판정이 난 뒤 수술 날까지 약 한 달간 일주일에 세 차례씩 혈액투석을 받았다. 수년 씩 투석을 받는 환자도 많은 현실을 생각하면 운이 좋은 편이었지만 꼼짝하지 못하고 4시간씩 투석을 받는 일은 심신을 지치게 했다. 혈액투석에 익숙하지 않던 처음에는 혼절하기도 했다.
“작년 12월 13일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죠.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요.”
마음을 걸러내니 행복 아닌 것이 없어라
“이 선생님, 신혼생활 재미있어요? 제주도로 한 번 오세요!”
“예,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하하!”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김석추 씨는 올해 초 제주도로 발령을 받았다. 수술 후 경과를 보기 위해 3주에 한 번 일산병원을 찾는다. 주치의 이형순 교수와는 의사와 환자 이상의 친근함을 느끼는 사이가 됐다. 이 교수는 “무척 모범적인 환자입니다. 꼼꼼하게 건강관리하셔서 오늘도 검사결과가 좋네요. 김 선생님처럼 많은 분들이 신장이식을 받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는 신장기증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라 많은 분들이 고통 받고 있어요.”라며 앞으로 신장이식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확산시키기 위해 신장이식환우회를 만들어갈 계획을 밝혔다.
김석추 씨도 조심스럽게 삶의 계획을 풀어놓았다.
“신장이식을 받고 나서 예전엔 사소하게 여겼던 것들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껏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다시 찾은, ‘건강이라는 이름의 선물’을 값지게 쓰려고 해요. 퇴직 후엔 신장병 환자들에게 제 경험을 나누며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김석추 씨는 신장이 우리 몸의 노폐물을 걸러내듯이, 선한 의지로 마음을 잘 걸러내면 행복 아닌 것이 없다는 삶의 진실을 울림 깊게 들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