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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에
가려진 예술가
‘신사임당’
현모양처를 대표하는 인물, 신사임당. 그러나 대학자를 길러낸 현모양처뿐만 아니라 천재 화가, 여류예술가, 국내 최고 고액권 지폐의 모델 등 그녀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현모양처가 아닌 여류예술가로서의 그녀의 발자취를 돌아봤다.
글·사진. 김은영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 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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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충도> 종이에 채색, 34×28.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62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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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와 곤충도> 종이에 채색, 34×28.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628~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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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도> 견본수묵(絹本水墨), 31.5×21.7㎝, 간송미술관 소장
우리 역사상 대표적인 현모양처이자 뛰어난 여류화가이기도 했던 신사임당(1504~1551)이 오늘날 우리 앞에 다시 등장했다. 2007년 여성 최초로 우리나라 화폐 인물에 선정된 데 이어 최근 블록버스터급 한류 드라마 >사임당-빛의 일기<가 방영되면서 오백 년의 역사를 건너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신사임당만큼 시대마다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된 인물도 드물 것 같다. 나의 어린 시절만 해도 한국의 어머니와 아내라면 신사임당은 모두가 본받아야 할 현모양처의 상징이었고, 최근에는 우리 사회 교육열을 반영하듯 아들을 대학자로 기른 어머니로서 이상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대부 지식인들로부터 조선 왕조 최고의 산수화가로 꼽히는 안견 다음가는 화가라는 평가와 유교 경전의 깊은 소양, 자녀교육과 집안일도 살뜰히 챙겼던 사임당은 보통 사람이라면 하기 힘든 일을 능히 해내었기에 우리가 시대를 초월해서 찬탄하는 것 같다.
사임당은 강원도 강릉 북평촌에서 신명화의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경전에 능통하고 시서화는 물론 바느질과 자수 솜씨도 뛰어났다 한다. 효성이 지극하기도 했던 사임당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아들 율곡 이이가 ‘선비행장’을 썼다.
“나의 어머니는 평소에 글씨나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하셨다. 일곱 살 때부터 안견의 그림을 본으로 삼아 산수도를 그렸는데, 매우 정밀하였다. 특히 포도를 그리면 모두 진짜 같다고들 했는데, 병풍과 족자의 형태로 세상에 많이 전하고 있다.”
<율곡 이이의 ‘선비행장’ 중>
율곡 이이가 행장에서 썼듯이 사임당은 산수와 포도가 절묘했으며 화조화, 초충도를 잘 그려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사임당의 산수화는 그림이 다 지워진 족자만 전할 뿐이어서 확인할 길은 없지만 ‘포도도’의 경우 5만 원권 지폐의 앞부분에도 일부가 담겨져 있다. 싱싱한 느낌의 포도송이와 탱글탱글한 포도알을 보면 포도를 눈앞에 두고 사생했을 사임당의 예술가적 열의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임당은 특히 ‘초충도’로 유명했다. 조선 시대의 모든 초충도는 사임당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독보적이었고, 화폭이 지닌 고상한 품격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방했다고 한다. 수박을 갉아먹고 있는 생쥐들의 모습을 귀엽게 그린 ‘초충도’(수박과 생쥐)는 재미있는 소재의 포착, 수박씨의 유머러스하고 정감 넘치는 묘사, 패랭이꽃과 나비의 조화로운 색채 감각이 돋보인다. 중앙의 화폭에 가지 두 그루, 가지의 양쪽에 한 마리씩 배치된 흰 나비와 빨강 나비가 날개를 펴고 땅 위에는 메뚜기 등 곤충이 어우러져 있는 ‘초충도’(가지와 곤충)도 정감 있다.
율곡 성리학을 계승한 송시열, 권상하에 이르는 당대 학자들이 사임당 그림을 찬미하는 발문을 남기기도 했는데, 율곡의 어머니라는 선입견에 크게 지배받아 오히려 올바른 평가가 흐려졌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사임당 예술은 들여다볼수록 고상하고 멋스럽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