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과 맛 품은
전주한옥마을의 가을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길고 긴 폭염이 끝나고 여행하기 좋은 최고의 계절, 소슬한 가을바람 맞으며 여행자처럼 유유자적 골목을 걷고 싶다면 어디가 좋을까. 평소 입을 일이 없는 한복도 이곳에 가면 인기 최고다. 화려한 전통음식에서 길거리음식까지 오감만족 먹거리가 넘치는 곳. 21세기 가장 한국적인 도시, 전주로 떠나본다.
여기서는 누구나 사극 드라마의 주인공
색색의 고운 한복을 입은 처자들이 한옥거리를 거닌다. 그윽한 눈매와 옷맵시가 청초한 난초를 닮았다. 낭군 품에 안겨 살포시 눈을 감는 새색시는 어떤가. 살짝 살짝 보이는 꽃신과 정수리 배씨댕기, 복주머니 핸드백까지. 사극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막 걸어 나온 듯 조선거리가 눈앞에 펼쳐진다. 여기서는 도포자락 휘날리는 이몽룡과 노란 저고리에 다홍치마 성춘향이 정담을 속삭이고, 저기서는 배꽃처럼 고운 치마저고리를 입은 처자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또 다른 곳에서는 자색 곤룡포 입은 임금님이 신하들과 함께 등장한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은 원래 일제강점기 일본상권과 대항하기 위해 지역주민들이 한옥을 지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며, 실제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도심형 한옥마을이다. 이후 반세기가 지나면서 전통을 간직한 한옥마을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당연히 관광객도 몰렸다. 하지만 한옥체험과 전통음식 외에는 특별한 체험거리가 없다는 것이 한계였다. 그러던 차에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토요일을 ‘한복데이’로 지정하면서 전주한옥마을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SNS도 한몫했다. 한복 입은 사진이 발 빠른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갔다. 지금 ‘전주에서 한복입기’는 가장 손쉽고 간편하게 전주를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체험거리이다. 덕분에 전주한옥마을에 가면 양반집 규수마냥 다소곳한 한복처자들과 위풍당당 잘생긴 한복총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청춘남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전주는 가볼만한 곳이다.
경기전과 전동성당은 필수코스
여행자들이 한옥마을에서 꼭 빼놓지 않고 찾는 곳이 경기전과 전동성당이다.
한옥마을입구에 위치한 경기전은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를 일으킨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인, 어진(국보 317호)을 봉안하기 위하여 태종 10년에 지었다. 경기전으로 향하는 600m 길은 가을이면 수백 년 된 은행나무 17그루가 황금빛으로 도열한다. 바람이 세게 불면 노란 은행잎이 비처럼 내려 환상적이다.
고풍스러운 한옥담장과 어울려 가을 정취가 물씬하다. 경기전에는 포토존이 유난히 많다. 덕분에 한복 입은 청춘들이 끊임없이 드나든다.
가을을 맞아 경기전 주변에는 화사한 꽃들이 한창이다. 정문에 세워진 하마비가 인상적이다.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고 적혀있다. 안으로 들어가면 노란 가을빛이 가득하다. 시원스레 뻗은 대나무숲이 가을에도 여전히 푸르름을 자랑한다. 후원에는 소나무와 은행나무가 어우러져 산책하기 좋다.
경기전 맞은 편,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전동성당은 전주한옥마을에서 만나는 유럽식 건물이다. 한국 천주교 순교 일번지인 이곳은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순교자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명하다. 호남지역의 서양식 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힌다.
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조명이 켜지고 고풍스런 중세 유럽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강동원 주연의 영화 <전우치>가 촬영되었으며 전도연, 박신양 주연의 영화 <약속>에서는 두 주인공이 슬픈 결혼식을 올리던 장소로 등장했다.
가장 한국적인, 가장 세계적인 전주의 먹거리
전주한정식은 다른 지방의 한정식과 차별화된다. 우선 전주는 태생적으로 맛의 고장이다. 드넓은 호남평야가 앞마당이요, 싱싱한 수산물이 넘치는 서해가 지척이다. 후백제의 수도로써 조선시대에는 호남을 관통하는 교통의 요지로써 최상의 식재료가 이곳으로 모였으니 음식의 품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 이처럼 신선한 재료와 상류층 문화의 진수를 살려 태동한 음식이 전주한정식이다. 전주 한정식에는 전주 8미(味)라 하여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모래무지, 콩나물, 황포묵, 미나리, 호박 등이 빠지지 않는다. 젓갈이 발달한 것도 특징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음식 맛이 깊고 진한 것도 젓갈덕분이다.
전통 놋그릇 속에 시금치, 고사리, 표고버섯, 숙주나무, 무생채, 애호박 볶음, 노란 황포묵 등 색색의 나물이 빙 둘러져있다. 중앙에는 육회와 계란 노른자가 화룡점정을 찍었다. 은행과 잣, 검은깨 고명까지. 전주비빔밥은 전주의 대표음식을 넘어 세계인이 즐겨 찾는 단골메뉴다.
전주에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콩나물국밥 또한 스테디셀러이다.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남부시장에 가면 제대로 된 콩나물 국밥을 맛볼 수 있다. 콩나물 국밥을 시켰는데 뜻하지 않게 오징어숙회가 나올 만큼 인심도 후하다. 김을 잘게 부수어 함께 나오는 수란에 뜨거운 콩나물 국물을 섞어 먹는 맛은 그야말로 꿀맛. 달달한 모주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전주한옥마을 길거리 주전부리는 인기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그 중 ‘비빔밥 고로케’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이국적 풍미가 가득한 길거리야 바게트빵과 항상 대기인원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다우랑 수제만두, PNB풍년제과에서 나오는 수제 초코파이는 1951년부터 3대를 이어온 추억의 맛, 전주대표 간식이다.
전주한옥마을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대중교통
전주고속버스터미널 → 190번, 429번, 163번 버스 → 한옥마을 정류장 하차
전주역 → 12번, 60번, 79번, 109번, 119번 버스 → 전동성당앞 하차
문의
한옥마을 관광안내소 063-282-1330, http://tour.jeonju.go.kr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