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정크푸드’에서 ‘웰빙’이 되기까지
웰빙 열풍이 불면서 정크푸드의 상징인 햄버거는 건강의 ‘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그랬던 햄버거가 최근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직접 반죽한 건강한 빵에 손수 다진 패티, 싱싱한 야채까지 곁들인 고급 ‘수제 버거’부터 최근엔 긴 웨이팅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맛볼 수 있다는 ‘쉑쉑버거’까지…. 건강을 지향하는 햄버거의 반란이 시작됐다.
말안장에서 유래된 햄버거
햄버거의 뿌리는 동양, 그것도 몽골 유목민들이라는 사실. 10세기 초 말을 달리며 생활한 몽골족들이 생존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바로 먹을거리였다. 초원의 척박함 때문에 음식을 구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음식을 조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남은 음식을 보존하는 것 또한 큰일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목민들은 건조식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았다. 당시 이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하나가 바로 ‘말안장 스테이크’, 햄버거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질긴 말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두들기다가 말의 등과 안장사이에 넣었던 것. 질긴 말고기는 하루 이틀 이동하고 나면 마찰로 인해 육질이 부드러워지고 쫀득쫀득해졌다. 여기에 소금과 같은 조미료로 간을 하고 나면 더없이 훌륭한 음식이 된 것이다.
이러한 말안장 스테이크는 몽골 침략 과정에서 헝가리와 동유럽에 전파되었는데 바로 ‘타타르 스테이크(tartar steak)’의 탄생이었다. 타타르 스테이크는 몽골인들의 말안장 스테이크를 익힌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일인들은 고기를 두들겨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갈아 만들어 더 깊은 풍미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함부르크 스테이크였다. 사람들은 이 새로운 요리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19세기가 지날 때쯤 ‘함부르크에서 만드는 불에 구운 스테이크 요리’라는 뜻으로 ‘햄버그(hamburg)’라 이름지었다.
햄버그, 미국에서 햄버거로 탄생하다
햄버그는 미국으로도 건너갔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었다. ‘골드러쉬’의 시작이었다. 미국인들은 마차를 구해 서쪽으로 계속 달려갔고 해외 이민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달려오기 시작했다. 함부르크 역시 발달된 항구라는 이유 덕분에 독일의 이민자들이 몰리게 됐다. 그리고 이들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햄버그는 미국으로 전파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햄버그는 독일 이민자들이 챙겨 먹는 ‘고향의 맛’ 정도였지 전 세계를 아우르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햄버그가 대박이 터지게 된 계기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박람회장에서였다. 손님들의 음식 재촉에 예민해진 주방장이 햄버그를 둥근 빵에 끼워 핫 샌드위치(hot sandwich)를 만들었다. 햄버거(hamburger)의 탄생이었다. 세인트루이스 박람회를 통해 태어난 햄버거는 미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이후 햄버거는 레스토랑의 기본 메뉴가 되었고, 맥도널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나오면서 그 맛이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 것이다.
웰빙으로 변신을 꾀하는 햄버거
잡동사니, 쓰레기라는 뜻의 영어 단어 ‘정크(junk)’가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결합돼 ‘정크푸드’라는 말이 탄생될 정도로 햄버거는 정크푸드의 대명사였다. 이러한 햄버거가 최근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건강에는 좋지 않다는 인식이 강했던 햄버거가 최근 들어 수제 햄버거 열풍과 함께 웰빙푸드, 슬로푸드 등 최신 유행의 건강식으로 조금씩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이태원을 중심으로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수제 햄버거 가게들은 강남, 압구정, 홍대 등 트렌드를 선도하는 거리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세계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날드 역시 지난해 20여 개 고급 식재료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즉석에서 만들어주는 프리미엄 수제버거인 ‘시그니처 버거’로 햄버거의 웰빙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최근 문을 연 쉑쉑버거는 미국 뉴욕에서 유명한 체인점으로 항생제와 호르몬제를 쓰지 않은 천연 소고기 패티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쉑쉑버거는 정크푸드의 이미지를 벗고 뉴욕을 대표하는 최고의 햄버거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더 이상 정크푸드를 거부하는 햄버거는 갓 구운 빵과 신선한 야채, 양질의 고기까지 곁들인 ‘웰빙푸드’를 자처하며 한동안 움츠렸던 기를 펴고 있다.
글.
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