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롭지 못한 시대를 살아온 세대에게 ‘중고’란 남이 쓰던 것을 물 려받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컸다. ‘중고’는 새것을 살 수 없는 형편 또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고물건 을 사고파는 일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치 있는 소비를 하고, 투자 수단이 되고, 취향을 거래하며, 보물찾기를 하는 놀이터이자, 사람 과 사람을 잇는 행위로 각광받고 있다. 요즘 남편들은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른 채 아내가 들려준 쇼핑백 을 들고 약속된 장소에 ‘당근’하러 간다고 한다. 거기서 만난 상대 역시 아내가 들려준 쇼핑백에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른 채 나와 있다 는 우스갯소리처럼 중고거래는 일상이 됐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는 무려 20조 원에 달 한다. 최근의 중고시장은 완성품을 판매하는 1차 시장보다 더 핫하 다. 2020년 4월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가 발표 한 <중고거래 앱 시장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중고거래 앱 ‘당근 마켓’의 일일 사용자 수는 약 156만 명으로, 국민쇼핑 앱으로 불리 는 쿠팡(397만 명)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당근마켓은 11번가·G마 켓·위메프·티몬 등 대형 오픈마켓을 제쳤을뿐더러, 톱 5 쇼핑 앱 중 유일한 중고거래 전문 앱이다. 본래 중고시장은 젊은 세대가 주도했지만 최근에는 다양한 연령대 로 확산하는 추세다. <조선일보>가 20~60대 남녀 1,535명을 대상 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중고거래를 가장 활발하게 즐기는 연령대는 30대(65.4%)였고, 40대(60.8%)가 그 뒤를 이었다. 코로 나19로 모바일 사용에 차츰 익숙해진 50~60대 소비자들도 중고 시장의 저변을 확대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집에서 안 쓰는 물건을 팔아 용돈벌이를 한다는 중장년층의 후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중고거래 플랫폼도 다양하게 성장하고 있다. 가장 주목
받는 중고거래 앱은 앞서 소개한 ‘당근마켓’이다. 2015
년 ‘판교마켓’으로 시작해 같은 해 10월 ‘당근마켓’으
로 이름을 바꾸고 2018년 1월부터 전국 단위의 서
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마켓’의 준말로, 이용자의 거주 지역을 기준으로 반경 6km 이내에
서만 거래가 가능하다.
동네보다 더 좁은 생활권을 상정한 플랫폼도 있다. ‘마켓빌리지’는
거래 대상을 반경 1km 이내로 제한한다. 같은 아파트 내 또는 걸어
서 5분 거리의 주민 간 거래로 차별화했다. 대학생들의 온라인 커
뮤니티 플랫폼으로 유명한 ‘에브리타임’은 중고 교재 거래를 위한
‘책방’게시판을 통해 학교 내 직거래가 활발하다.
이 외에도 특정 물품만 거래하는 전문 플랫폼도 진화하고 있다. 유
아·아동 용품을 전문으로 하는 ‘땡큐마켓’, 명품 전문 중고거래 앱
‘필웨이’, 골프 마니아들의 성지 ‘골마켓’, 중고 악기 거래사이트 ‘뮬’
등이 있다. 무인 중고거래 자판기도 등장했다. 판매할 물건을 투명
한 사물함에 넣고 연락처·상품 안내·희망 가격 등을 적어두면 불필
요한 대면 접촉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
N차 신상 시장이 정착되려면 중고품 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 보하기 위한 서비스와 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으로는 중고시장에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해 서 비스 차별화를 시도하고, 단순한 중고거래 플랫폼의 기능을 넘어 커뮤니티의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구매할 때 처분까지 생각하는 필환경 시대, 공유에 너그럽고 싫증 을 빨리 내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등장, 코로나19로 인한 짠테크와 집콕소비 증가, 쉽고 안전한 거래 플랫폼의 발달이 맞물 려 중고거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