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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저씨를
‘아재파탈’로 만드나
아저씨의 변신은 무죄? 최근 아저씨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아저씨라고 하면 어딘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았다면 지금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덧대지면서 ‘아재’라는 애칭이 등장했고, 아재와 옴므파탈이 붙어 ‘아재파탈’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글. 정덕현 칼럼니스트 일러스트. 김남희
원빈에서 공유까지, 아재파탈의 작은 역사
아저씨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버린 건 바로 원빈이다. 영화 <아저씨>에 원빈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아저씨는 ‘매력이 없다’고 여겨지던 선입견이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원빈이라는 꽃미남이 아저씨가 되어 세상의 아이들을 구하러 나서자 여성들은 물론이고 이 땅의 많은 아저씨들조차 대리만족을 느꼈다. 짧게 스스로 밀어버린 머리에 우수에 찬 눈빛의 원빈은 아저씨도 ‘멋있을 수 있는’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그 아저씨는 이제 ‘아재’라는 이름으로, 또 그것을 뛰어넘어 ‘아재파탈(아재+옴므파탈)’이라는 극존칭으로 다시금 대중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드라마 <시그널>에서 그토록 범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뛰고 또 뛰던 조진웅이 그렇고,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만큼 주목받은 진구가 그러하며, <닥터스>로 한없이 따뜻한 남자의 향기를 느끼게 해준 김래원이나, 영화 <부산행>에서 좀비들이 뛰어다녀도 어딘지 든든하게 느껴지는 마동석이 그렇다. 최근에는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로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공유가 바로 이 ‘아재파탈’의 대열에 동참했다.
아저씨 하면 배 나온 양복쟁이에 어딘지 고집스럽게 가르치려는 이른바 ‘꼰대’의 이미지가 떠오른다는 건 이제는 옛말이 되었다. 여전히 청춘처럼 잘 관리된 몸과 거기에 덧붙여진 성숙된 자아. ‘아재파탈’은 바로 이런 새로운 중년의 지향점에서 탄생한 신조어다.
관리가 가능한 몸,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삶의 태도
물론 ‘아재파탈’이 가능해진 건 의학기술의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 한 때 나이란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숙명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우리 몸이 어떻게 관리되느냐에 따라 젊은 상태를 더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신체나이는 물론이고 외모까지도 관리될 수 있는 시대에 나이는 절대적 개념이 아닌 상대적 개념이 되었다. ‘꽃중년’, ‘미중년’ 같은 말들은 이제 그리 낯선 개념이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몸 관리로 인해 젊은 몸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된 건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몸이 젊다고 해도 생각이 젊지 못하면 어찌 젊다 말할 수 있을까. ‘아저씨’가 ‘아재’라는 애칭으로 바뀌게 된 건 이 새로운 중년들의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는 모습이 청춘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였다는 얘기다. 이른바 ‘아재개그’란 과거 그저 ‘말장난 개그’의 하나로서 썰렁한 개그를 뜻하는 의미도 있지만, 그래도 젊은 세대가 호응해주게 된 건 그 아재들이 하는 소통의 노력이 긍정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재파탈이 바꾸고 있는 새로운 중년 문화
아재파탈은 또한 지금의 중년 문화가 과거와 달라지는 분기점에 서 있다는 걸 말해주기도 한다. 한때 가장이라는 무게에 어깨가 짓눌린 채 일에만 매몰됐던 중년들이 이제는 스스로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중년 문화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TV를 켜면 이 중년들의 문화들이 얼마나 달라졌는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아재들의 육아가 주는 새로운 행복감이고, <집밥 백선생>과 같은 쿡방은 생전 부엌 문턱도 넘지 않던 아재들의 앞에 펼쳐진 요리라는 즐거운 신세계다. <삼시세끼>는 일에서 훌쩍 벗어난 아재들이 어느 시골에서 즐기는 소꿉놀이 같은 프로그램이다. 그런가 하면 <자기야-백년손님> 같은 프로그램은 그동안 소원했던 처가와의 관계를 훌쩍 뛰어넘는 사위의 ‘처가살이’ 보여준다. 이러한 아재들의 프로그램은 육아부터, 요리, 놀이, 심지어 처가살이까지 하나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새로운 중년 문화를 보여준다.
청춘들과 소통하고 또 막연한 미래의 성공이 아닌 현재의 행복을 추구하는 아재들의 새로운 삶의 문화는 한때 권위적인 아저씨들이 만들어왔던 부조리를 깨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아재들의 중년문화가 더 중요한 점은 그들의 변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남아있는 가부장적 문화를 해체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아재파탈’이라는 찬사는 그래서 바로 그 아재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또 그들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질 수 있는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도 기꺼이 추구되는 우리 시대의 트렌드이자 가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