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여행
순백의 땅, 강원도 인제 느리게 걷기

자작나무는 겨울왕국에서나 만날 수 있는 나무의 귀족이다.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성결한 성직자를 대면하듯 숲속에 발을 들여놓는 것 자체가 힐링이요, 쉼이다. 자작나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순백의 땅, 강원도 인제에서 겨울의 참된 행복을 찾아보자.
겨울의 땅, 강원도 인제
구불구불한 길을 몇 고개나 넘었을까? 서울에서 3시간 남짓 달려 인제에 도착했는데 아직까지 고개를 넘고 있다. 찬바람이 가득한 산야(山野)는 새하얀 이불을 덮어쓰고 깊은 잠에 빠진 듯 침묵한다. 원대리에 자리한 자작나무숲을 찾아가는 동안 꽤 여러 번 귀가 먹먹해졌다. 그만큼 지대가 높고 산이 깊다. 드디어 유난히 하얀 수피를 뽐내는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룬 지역에 도착했다.
“아! 이곳이 그곳인가?” 스스로 질문했다.
“그래! 여기가 분명해!” 그리고 스스로 확신에 차서 답했다. 주차장은 생각보다 넓다. 그만큼 찾는 이가 많다는 뜻이다.
“여기 방명록에 방문자 기록사항을 적고 가세요.” 산림감시초소 안내원의 말이다. 번거롭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숲이 숲다워진다는 생각에 위로가 되었다. 오후 5시 이후에는 입산통제이기 때문에 최소한 오후 3시경에는 도착해야 여유롭게 숲을 돌아볼 수 있다.
안내소를 지나 야트막한 오르막길을 따라 임도를 걷는다. 길옆으로 승마체험장이 조성되어 있다. 설원(雪原)에 우뚝 선 하얀 자작나무와 말 근육 뽐내며 윤기 좔좔 흐르는 흑마의 조화가 이국적이다.
숲까지 가는 길은 40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길이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다. 쉬엄쉬엄 산보하듯 걸음걸이가 여유롭다. 마지막 잎새처럼 대롱대롱 매달린 나뭇잎에 태양빛이 집중되자 은비늘처럼 반짝반짝 빛을 발한다. 이미 오래전에 떨어져야 할 잎임에도 나를 위해 마지막 잎새를 남겨둔 것 같아 대견하고 고맙다.
숲이 주는 안식과 평안을 경험하다
언덕 너머에서 골바람 소리가 매섭게 들린다. 첩첩산중 은밀한 곳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분명하다. 그곳이 오늘의 목적지가 아닐까, 생각하니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40분 남짓한 시간을 임도에서 보낸 결과 드디어 이정표가 보인다. 지금까지 봤던 듬성듬성 뿌리내린 자작나무가 아니다.
거대한 이쑤시개통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자작나무가 빼곡하다. 하얀 수피의 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모습이 마치 기도하는 성자의 모습처럼 고귀하다. 영화나 광고에서 보던 북유럽의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무의 귀족이란 말이 괜스레 자작나무에 붙은 게 아니다. 파란 하늘과 황량한 동토(凍土)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자작나무가 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자작나무는 심미적 가치뿐 아니라 실용성까지 겸했다. 대표적인 용도가 인테리어 소품이다. 또한 예로부터 껍질은 겨울에도 불이 잘 붙어 땔감과 종이 대용으로도 널리 사용했다고 전한다. 껌으로 잘 알려진 자일리톨 성분도 자작나무에서 추출한다.
이곳은 1990년대 초반에 산림청이 약138ha(41만여 평)규모에 70여 만 그루를 조림한 인공 숲이었다. 그래서인지 관리 잘 받은 귀한 몸처럼 나무가 곧게 잘 뻗어 있다.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으면서부터 입소문이 난 뒤다.
자작나무 숲길은 모두 세 갈래로 나뉜다. 가장 짧은 구간은 자작나무코스로 900m이다. 그리고 치유코스는 1.5km, 탐험코스는 1.1km이다. 어느 구간을 선택해도 괜찮다. 간간히 폐목을 잘라 길을 만들어 놓았으나 겨울에는 눈에 뒤덮여 코스가 무의미하다. 자작나무숲의 백미는 겨울이다. 새하얀 눈보다 제가 더 희다고 뽐내는 자작나무를 대할 때면 보는 이의 마음까지 청결해진다.
황태의 본고장 인제
차가운 동해에서 많이 잡히던 어종이 명태였다. 이것을 원산 사람들이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덕장에서 말리기 시작했다. 3~4개월 동안 혹한의 바람을 맞으며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 명태 속이 스펀지처럼 두툼하게 유지되면서 살이 노랗게 변한다. 맛있는 황태로 변하는 순간이다.
황태가 우리 식탁에 자주 올라오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원산 출신들이 강원도 인제로 이주해오면서부터다. 인제는 원주와 자연조건이 가장 비슷해서 명태를 말리기에 좋은 조건이다. 특히 인제 용대리마을은 첩첩산중에 둘러싸여 요새와 같은 곳으로 국내 황태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황태는 〈동의보감〉에 따르면 신체 각 기관 신진대사의 활성화와 머리를 맑게 해주고, 북어와 달리 육질이 산에서 나는 ‘더덕’을 닮았다하여 ‘더덕북어’라 부르며, 숙취해소와 간장해독, 노폐물제거 등에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황태 요리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메뉴는 뽀얀 국물이 우러난 황태해장국이다. 무와 황태, 콩나물을 넣고 시원하게 끓여내면 어떤 숙취도 첫술에 물러간다. 포슬포슬한 속살과 구수한 황태의 식감을 제대로 즐기려면 황태구이가 좋다. 고추장과 간장으로 맛을 낸 양념장을 바른 후 앞뒤로 구워내면 누구나 좋아하는 황태구이가 된다. 아이들에게는 황태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뒤 달콤한 양념을 묻힌 황태강정이 좋다.
자작나무숲과 황태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겼다면 감성충만까지 노려볼 수 있는 박인환문학관을 찾아보자. 박인환 시인은 인제에서 태어나 짧은 생을 마감했는데 195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즘 시인이다. 대표작으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이 있다. 문학관 실내는 1950년대 명동거리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모더니스트 시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마리서사’, 모더니즘 시운동의 시초가 된 선술집 ‘유영옥’ 해방이후 명동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봉선화 다방’ 등 시인과 연관된 당시 명소들이 사실감 있게 재현되어 볼만하다.
  - 여행정보 -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안내소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원남로 760
인제국유림관리소
(033) 460-8036

용대리 황태마을
인제군 북면 용대리 339-5(용대리황태촌)
(033) 462-4808

박인환문학관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인제로
156번길 50 산촌민속박물관
(033) 462-2086

문의 :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033) 460-2081~44
 
글・사진. 임운석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