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발견
커피, 참을 수 없는 유혹

한걸음을 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커피 전문점. 길을 걷다 보면 한 손에 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찮심게심 발견할 수 있다. 우리 국민이 마시는 커피는 하루 평균 3백만 톤으로, 1인당 연간 5백 잔 이상의 커피를 마시고 있셈는이 다. 우리에게 커피는 어떤 존재일까?
악 마 의 유 혹 에 빠 지 다
프랑스의 문호 발자크(Honor de Balzac)의 작품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적인 대문호였지만 그의 일생의 목표는 사실 문학적 성취 같은 것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일은 다른 열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직업'이었을 뿐이다. 빚 때문에 계속해서 글을 써야 했던 도스토옙스키만큼이나 발자크는 다작으로 뒤지지 않는다.
발자크가 기계처럼 글을 '찍어낸' 이유는 바로 결혼 때문이었다. 그는 33살에 유부녀였던 한스키 폴란드 백작부인에게 첫눈에 반해 청혼을 했다. 당시 남편이 있던 백작부인은 처음엔 당황했지만 그의 열정에 감복하고 만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의 내 남편이 죽는다면 나는 꼭 당신과 결혼할게요."
백작부인과 결혼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지위와 재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발자크는 그 이후로 미친 듯이 글을 써내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 하루에 커피를 수십 잔씩 마셨다. 결국 18년 뒤인 그가 51세 되던 해, 자신의 꿈이었던 백작부인과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카페인 과다복용으로 결
혼한 지 5개월 만에 발자크가 죽고 만 것이다. 그가 평생 동안 마신 커피는 약 5만잔. 유부녀와의 비밀스런 연애, 빠르게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약물처럼 복용한 커피, 그리고 결국 원하는 걸 얻었지만 요절해버린 불운…. 그의 인생은 커피를 부르는 다른 말인 '악마의 유혹'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커 피 는 염 소 도 춤 추 게 한 다
커피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단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통해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커피를 먹어왔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전설은 기원전 3세기 에티오피아의 목동 칼디(Kaldi)에 관한 것이다.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뜯어먹고 나더니 밤새 흥분하여 춤추듯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근처 수도원의 승려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승려들은 그 열매가 정신을 맑게 하고 피로를 덜어준다는 것을 알게 됐고, 사원에서 기도할 때 졸음을 쫓기 위해 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커피는 콩을 빻고 볶아서 빵에 발라먹는 형태였다.
커피를 음료로 만들어 즐기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커피 열매를 불로 건조하여 보관하던 아랍인들이 실수로 커피를 볶게 되었는데, 더 좋은 맛과 향이 난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이후로 음료로 즐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음료가 된 커피는 이전과는 다른 차원에서 인기를 끌게 된다. 커피는 예멘을 통해 이슬람의 중심지인 메카로 전해지게 된다. 예배 시 졸을 방지할 목적으로 약처럼 마시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은 점차 맛에 매료되어 예배 외의 시간에도 커피를 즐기게 되었다. 커피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커피하우스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커피하우스에 사람들이 모이게 되자 이를 불안하게 여긴 메카의 통치자는 커피하우스를 폐쇄하고 커피 금지령을 내리기 위해 술탄을 찾아간다.
그러나 커피 맛을 본 술탄은 오히려 술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커피가 대체음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고 널리 보급한다. 커피는 순식간에 중동 지방을 휩쓸고 유럽까지 건너가게 된다.
커피가 이슬람에서 건너왔다는 사실 때문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중세유럽 사회에선 커피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지만, 한 번 맛을 본 사람들은 그 맛에 빠져들었다. 커피를 정식으로 금지를 하기도 전에 커피애호가들이 양산됐고, 금지는 해야 될 것 같은데 금지는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한 동안 유지됐다. 그러다 교황 클레멘트 8세가 커피를 직접 맛본 뒤 말한 한 마디에 그 교착상황이 끝나버렸다.
"이렇게 좋은 걸 저 이슬람 놈들만 마시는 건 말도 안 된다!"
교황이 커피를 축복함으로서 커피는 족쇄가 풀려 단숨에 유럽을 정복하게 된다.
 
인 스 턴 트 커 피 , 대 중 화 를 이 끌 어 내 다
커피가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보급된 데에는 물만 부어 간편히 만들 수 있는 인스턴트커피 덕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어낸 것은 1901년 일본계 미국인인 카토 사토리 박사였다. 최초의 인스턴트커피는 커피액을 농축시킨 액체형식이었다. 현재와 같은 고체 상태의 인스턴트커피는 1950년대에 들어 등장하게 된다. 인스턴트커피가 널리 보급된 계기는 브라질의 경제위기였다. 1920년대 말 브라질에선 유래 없는 커피콩의 풍년이 왔다. 생산량이 수요를 초과하자 커피콩의 시세가 폭락해서 다수의 농민들이 몰락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당황한 브라질 정부는 식품회사인 네슬레에 잉여 생산량을 해결할 수 있는 가공식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개발에 나선 네슬레는 1938년 네스카페(Nescafe)라는 상품명으로 인스턴트커피를 시판하게 되었고, 네스카페는 인스턴트커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인스턴트커피 대중화에 이야기에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채 전투를 치러야 하는 군인들은 졸음 때문에 종종 아군을 오인사격하기도 했다. 그들이 졸음을 참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전투식량에 인스턴트커피를 보급하게 됐다. 한국에 커피가 도입된 것도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이 계기가 되었다. 미군의 전투식량이 한국인들에게 유출되면서 인스턴트커피가 일반화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원두커피보다도 인스턴트커피를 선호하는 모습을 최근까지 보여 왔다.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커피 소비 중 90%는 인스턴트커피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글.김지룡 〈사물의 민낯〉 저자,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