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여행
지금쯤 그곳에 가면
나를 깨우는
봄 치유여행


병아리 솜털 같은 노란색 꽃이 지리산 비탈진 마을에 몽글몽글 피었다.
산수유꽃은 모진 겨울 이겨내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한다.
절대 변하지 않는 계절의 톱니바퀴가 앙상한 나뭇가지에 노란 물감을 찍으며 새봄을 노래한다.
무채색이었던 마을이 화려하게 채색되고 봄맞이가 한창이다.
영원을 노래하는 사랑의 치유
그곳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봄의 한가운데 있다. 높디높은 지리산 자락에는 지난겨울에 내린 눈이 이제야 녹기 시작했다. 봄 바람이 등을 떠밀고 나섰으니 만년설 같던 설경도 더는 지체할 수 없었나 보다. 눈과 얼음이 땅속으로 스르르 녹아들었으니 말이다.
전라남도 구례군은 우리나라 최대의 산수유 군락지이다. 지리산의 비옥한 토질과 섬진강의 맑은 물이 만났으니 고운 빛깔의 빨간 산수유 열매를 맺는 것은 당연한 이치. 열매는 사람이 수확하지만, 그
것을 맺게 하는 것은 조물주의 섭리임에 분명하다. 산수유는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도 자생하며 과수목으로 식재하고 있지만, 구례만큼 대단위를 이룬 곳은 없다. 실제로 구례군은 우리나라 산수유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다 보니 매년 봄이 되면 노란 산수유꽃이 구례 전역에 구름처럼 번지며 피어난다.
구례에서 산수유꽃이 군락을 이뤄 피는 곳은 산동면 대평마을, 반곡마을, 하위마을, 월계마을, 상위마을을 비롯해 현천마을, 계척마을, 달전마을 등 산동면 대부분의 마을이다. 이들 마을 중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리는 곳을 산수유마을이라 부른다. 대평마을과 반곡마을, 월계마을, 상위마을이 이에 속한다. 마을 한가운데에 흐르는 각시계곡주변이 특히 아름답다.
산수유마을에 가면 봄볕 쬐는 병아리마냥 마음이 평온해진다. 추운 겨울을 지내느라 잔뜩 움츠렸던 어깨에도 힘이 빠진다. 일터에서는 손발이 잠시 멈출 겨를도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춘곤증에 빠진 듯 느리기만 하다. 이 또한 봄꽃이 주는 치유력이다. 산동면 사람들은 언제부터 산수유나무를 심었을까?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주민들 사이에 전해지길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 사는 처녀가 구례군 산동면으로 시집올 때 처음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중국 산동성과 같은 산동면이다.
산수유 사랑공원에 오르면 거대한 산수유 조형물이 기다린다. 꽃이 작아서 쉽게 생김새를 살펴보지 못했다면 조형물을 유심히 관찰해보라. 한 꽃받침안에 수십 송이의 작은 꽃들이 송골송골 피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옹골지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흔히 산수유는 세 번 꽃을 틔운다고 한다. 먼저 꽃망울이 벌어지고, 이어서 20여 개의 노란 꽃잎이 세상구경을 한다. 이후 좁쌀 크기의 꽃잎이 다시 터지면서 하얀 꽃술이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왕관을 닮았다. 이처럼 꽃들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근 한 달 가까이 노란 산수유꽃을 감상할 수 있다.
산수유꽃향은 새콤달콤하다. 그리고 진하다. 수십만 그루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세상구경을 나온지라 온 마을에 향이 진동한다. 산수유마을에는 빈집이 많다. 돌담도 엉성하고 심지어 무너진 곳도 여럿이다. 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을 뿐 빈집은 아니다. 산수유꽃이 주인이다. 산수유나무는 돌담 너머로 긴 가지를 뻗어 봄꽃 여행 온 상춘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그것은 마치 영원한 사랑을 이어주는 치유의 손길 같다.
섬김의 실천 , 타인능해운조루
토지면은 멀게는 지리산이 펼쳐지고 가깝게는 형제봉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아늑한 땅이다. 이곳에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운조루가 있다. 조선 후기 양반가옥의 전형이 잘 보존된 보기 드문 99칸 고택이다. 최근 운조루 가까운 곳에 한옥체험형 숙박업소가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어딘들 좋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한옥을 즐기고 싶다면 운조루 만 한 곳이 없다.
운조루란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을 뜻한다. 중국 송나라의 도연명이 지은 귀거래혜사(歸去來兮辭)에서 따왔다고 전한다. 숙박이 가능하다면 운조루 큰 사랑채 누마루에 올라 솟을대문과 바깥풍경을 감상하자. 한옥의 멋과 여유를 즐기기에 그만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던 원통형의 뒤주도 챙겨볼 것. 누구나 쌀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의 '他人能解(타인능해)' 라는 문구가 남아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쌀을 채워 마을의 굶주린 이를 위해 항상 개방했다고 한다. 운조루는 굴뚝이 채 1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야트막 하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 배고픈 이웃들에게 밥 짓는 냄새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이 미안해서다. 이처럼 작은 섬김과 배려가 있었던 덕분에 운조루는 동학난, 여순반란사건, 6·25한국전쟁 때도 무사했다. 심지어 지리산 빨치산 이 집을 불태우려 하자 마을 사람들이 앞장서 화마로부터 지켜냈다고 한다
구례의 건강한 밥상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음식 을 약선식이라 했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산수유는 성질이 따뜻하고 평한 약재이며, 간과 신장을 보호한다고 전한다. 특히 신맛은 근육의 수축력을 높여주고 방광의 조절 능력을 향상시켜 어린이들의 야뇨증과 노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요실금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고 한다.
구례는 섬진강 자락에 기대어 다슬기가 유명하다. 주로 탕으로 먹거나 수제비를 끓여 먹는다. 국물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며 얼갈이배추가 들어가서 더 시원하다. 음식은 단순히 입으로만 먹는 게 아니다. 오감으로 즐기려면 먼저 색을 보고, 냄새를 맡은 후 국물 한 모금을 떠먹어보라. 개운하면서 시원한 맛이 속을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반찬은 단출할수록 좋다.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잘 익은 신김치와 매콤한 청양고추만 있으면 그만이다. 시원한 국물이 신김치의 새콤한 맛과 매운 고추의 매콤한 맛을 중화시켜 개운하다. 이렇게 다슬기탕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꼬였던 속이 확 풀리고 샤워를 한 듯 등줄기에 땀이 쭈욱 흘러내린다.
몸이 살아나는 느낌이 이 맛이다. 자칫 지치기 쉬운 봄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 구례 산수유꽃 여행은 치유여행인 셈이다
- 여행정보 -
산수유마을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상관1길 45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825번지)

대중교통 :
서울기점 용산역에서 열차운행,
KTX 1일 2회 운행

문의 :
구례군축제추진위원회 (061) 780-2726~7
문화관광과 관광진흥담당 (061) 780-2227
 
 
글・사진.임운석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