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만남
"새롭게 태어났으니, 남은 삶은 남을 위해 살아야지" 일산병원 사회사업후원금 수혜자 하인택 씨(79)


일산병원은 '사회사업후원금'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심의와 심사를 통해 의료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사회사업후원금'을 통해 치료받은 환자는 95여 명. 치료가 그 누구보다 절실했던 이들에겐 꿈만 같은 일이다. 하인택 씨 또한 지난 3월 7일,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는 힘겨운 수술 끝에 새로운 삶을 얻었다.
홀로 보낸 고독한 세월만큼 깊은 병
그의 일상은 집 앞에서 일산 호수공원으로 이어지는 솔밭 길을 산책하고, 오후에는 노인종합복지관에 들러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그날도 평상시와 크게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똑같이 솔밭 길을 걷고 집으로 와 쓰레기를 버리고 계단을 오를 참이었다.
"갑자기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가슴이 아팠어. 그리곤 한 발짝도 걷질 못 하겠는 거야."
그렇게 119 구급차에 실려 도착한 곳이 일산병원 응급실이었다. 의료진은 신속히 하인택 씨의 증상을 바탕으로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의 병명은 '대동맥판막 협착증'과 '관상동맥 협착증', 그리고 이로 인한 '폐동맥 고혈압'. 병의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그의 수술을 집도한 이는 2000년 일산병원 개원 이래 흉부외과 수술 사망률 0%를 자랑하는 베테랑이자 넥타이로 인한 병원감염을 막기 위해 '나비넥타이를 매자'는 캠페인을 시작하고 있는 강경훈 흉부외과 교수였다.
"하인택 씨는 조금만 늦었어도 뇌졸중과 같은 병으로 이어질 수 있었어요. 수술을 하려고 보니, 대동맥 벽뿐 아니라 대동맥판막이 딱딱하게 굳은 정도가 수술 전 평가때 보다 석회화가 심각했어요. 모래성처럼 건들이기만 해도 조각이 후드득 떨어질 정도였으니…. 이 대동맥판막 조각이 혈관을 타고 뇌로 들어가면 뇌졸중이 되어 반신마비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그는 손에 하인택 씨 몸에서 떼어낸 딱딱한 대동맥판막을 보여주며 수술 전 그의 심각한 상태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대동맥판막은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위치하며, 대동맥의 혈액이 좌심실로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대동맥판막이 좁아져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류가 충분히 나가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고 한다. 대게 이 경우 빠르게 걷거나 계단 오르기도 불가능할 정도로 숨이 찬 경우가 많으며, 가승통증은 물론, 심한 경우 심장마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고.
새롭게 얻은 삶, 남을 위해 살고 싶어
그의 수술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79세인 노인이 감당하기엔 다소 무리기도 했다. 일반적인 수술의 마취는 15분이면 되지만, 심장마취는 심장마취 전담 전문의에 의해 1시간 30여 분에 걸쳐 진행됐다. 혹여나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하인택 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모니터링장치를 완벽히 설치하고 그의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할 인공심폐장치를 연결한 후에야 수술이 시작됐다.
"먼저 딱딱하게 굳은 대동맥판막을 떼어내는 것이 중요했어요. 쉽게 부서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진행됐죠. 그리곤 조직판막을 이식했어요. 인공판막엔 조직판막과 기계판막이 있는데, 조직판막은 기계판막보다 수명이 제한되어 있지만 혈전을 예방하는 항응고제를 3개월 정도 투여하면 정상인처럼 생활가능해요. 기계판막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며, 이에 대한 합병증이 있어 아무래도 조직판막이 부담이 덜 갈 것이라 판단되어 그렇게 했죠. 아, 걱정 말아요. 적어도 15~20년은 거뜬하니, 앞으로 100세까진 무리 없을 거예요."
그는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와 회복기간을 거쳐 일반병동에서 수술경과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이미 퇴원했어도 될 몸 상태지만, 항응고제 등 그에게 투약할 약의 용량을 결정하기 위해 조금 더 두고 보고 있는 중이라고.
"수술이 아주 잘 됐다고 하더라고. 수술을 하러 올 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모든 짐을 정리하고 왔어.

그런데 이렇게 내가 잘 살아서 전보다 더 건강해졌다고 하니 꿈만 같더라고. 이제 내 남은 삶은 남을 위해 살 거야. 회복되는 대로 뭘 할 수 있을지 찾아봐야지. 그렇게 살다 죽는 날이 가까이 오면 내 몸뚱이는 나 고쳐준 훌륭한 의사선생님들께 기부하려고. 그래야 의사선생님들이 더 많이 공부해서 나 같이 어려운 이들을 도와줄 수 있을 거 아냐."
하인택 씨는 그의 몸 상태를 체크하러 회진 온 강경훈 교수의 손을 꼭 잡으며 몇 번이고 감사의 말과 함께 나중에 삶을 다하면 내 몸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거듭 강조했다. 아마 그 약속은 그에게 새 삶을 선물해준 사람들에게 그가 줄 수 있는 전부이자 그것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치료 앞에 차별 없는,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위해 노력 하겠다"는 강경훈 교수, 그의 실력 뒤에 든든한 일산병원이 있어 오늘도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운다.
 
 
글. 왕보영 사진. 이서연(아자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