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essay

당신은 언제 행복한가요? 자녀가 취업에 성공했을 때? 주식이 올랐을 때? 좋은 물건을 싼값에 샀을 때? 이같이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스스로를 기쁘게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있습니다. 바로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깨닫고, 사소한 기쁨을 자주 누리는 일입니다.

엄지혜(작가, 기자)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자

마음이 시끄러운 상태로 출근한 날이었습니다. 어쩐지 마음이 맑아지지 않아 출근길에 쓴 커피 한 잔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갔습니다. 책상 위에 작은 박스 하나가 보였어요. 도착할 택배가 없는데 자리를 잘못 찾은 게 아닌가 열어보니, 옆 팀 동료가 놓고 간 엽서와 머그잔이었습니다. “지난주 기자님이 주신 전시회 티켓으로 남편과 오랜만에 데이트를 했어요. 전시장에서 기념 머그잔을 팔더라고요. 좋아하실 것 같아 하나 구매했습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귀여운 엽서를 보니 미소가 절로 나왔습니다. 시큰둥했던 마음은 이미 제 곁을 떠난 후였고요. 작은 호의에도 고마움을 전하는 동료의 마음 씀씀이 덕분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습니다.

똑같은 호의를 베풀어도 인사는 달리 옵니다. 며칠 전에는 두 후배와 점심을 먹었는데요. 한 친구는 밥을 먹고 나서 카톡으로 말을 걸더라고요. “선배님, 오늘 식사 정말 맛있었어요. 다음 기회에는 제가 꼭 대접하겠습니다.” 선배가 밥을 사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인데도 ‘고맙다’는 인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요. 그런데 다른 한 친구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친구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싶을까요? 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상대에게 마음이 더 기울지 않을까요?

오래전 가수 한대수 씨를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그가 산문집 『바람아, 불어라』를 출간했을 때였는데요. 책에서 ‘성공의 4가지 비결’을 이야기했습니다. “약속을 지켜라,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해라, 바로 사과하라, 유머감각을 가져라.” 어떤가요?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 굉장히 쉬워 보이는 이야기 아닌가요? 이 말을 들었을 때 제가 꽂힌 문장은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해라”였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것, 유머감각을 갖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입니다. 누군가로부터 호의를 받았을 때, ‘고맙다’고 말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에 인색합니다. 진심을 다해 고맙다고 말하면 누구에게 좋을까요? 상대방만 기분이 좋을까요? 그 고마움은 결국 나에게 돌아옵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준 상대에게 더 고마운 행동을 하고 싶을 테니까요.

저는 그날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상투적인 인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건네는 한마디. 인터뷰해준 작가들에게도 ‘고맙다’고 말하고, 뛰어오는 저를 기다려준 버스기사께도 감사 인사를 잊지 않습니다. ‘고맙다’는 말 덕분에 내 존재가 추켜세워지고 살아갈 이유가 생기고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비교 행복을 끊어내자

“한국 사람들이 왜 이렇게 불행한 줄 아세요? 매일매일 타인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나보다 더 성공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해요. 비교하지 말아야 해요. 그것이 당신이 행복해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을 만나 인터뷰할 때면 언제나 듣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어떻게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한 일로 여겨집니다. 하지만 유독 한국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과하게 신경 씁니다. 저 사람의 처지보다 내 상황이 낫다고 여겨지면 안심하지만 언제나 상황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얻는 행복은 잠시 잠깐입니다.

음주 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에 3도화상을 입었던 이지선 작가를 기억하나요? ‘대한민국 화상 1등’이라고 불릴 만큼 심각한 화상을 입어 살 가망이 없다는 병원의 비관적인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이지선 작가는 4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치료를 이겨내고 현재 한동대학교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2003년 이지선 작가가 첫 책 『지선아 사랑해』를 썼을 때, 많은 사람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기적 같은 사연을 읽고 나니 나도 살아갈 희망이 보인다.” 그리고 이지선 작가의 상황과 스스로를 비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작가는 ‘비교 행복’이라는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혔고요.

“예전 제 책을 읽으시거나 강연을 듣고 ‘나도 힘내서 살아야지’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반가웠어요. 하지만 ‘나는 이지선처럼 다치지 않고 이런 고통을 겪지 않았으니 감사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으면 전혀 달갑지가 않았어요. 조금 갑갑하고 안타까웠죠. 왜냐면 나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과 비교해서 얻은 감사와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어요. 비교 행복은 일시적인 진통제처럼 잠깐 위안이 될지도 모르지만 내 삶을 이끌어갈 힘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이지선 작가는 수많은 수술을 받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존경받으며 강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홀로 떠난 유학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수많은 사람을 생각하며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지선 작가는 자신의 인생을 두고 ‘꽤 괜찮은 해피엔딩’이라고 말합니다. 2022년 봄에 동명의 책을 펴내기도 했고요.

작가가 책을 낼 때마다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는데 제 머릿속에 오래 기억되는 한마디는 바로 “비교해서 얻은 행복은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잠깐은 안심할지 모릅니다. ‘내가 그래도 저 사람보다 낫지’라고 생각하는 데서 오는 위안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비교 대상은 언제나 또 생겨납니다. 나보다 처지가 나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다시 흔들리게 되니까요. 한 시간짜리 행복은 아무리 방부제를 넣어도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마련입니다. 오롯이 나 자신을 마주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진짜입니다.

진짜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질에 있다

대학생 시절, 사회학자 정수복이 쓴 『바다로 간 게으름뱅이』를 읽었습니다. 지금은 절판된 이 책에서 저자는 느림, 걷기, 게으름, 인간관계의 질, 기다림, 낮잠, 포도주 같은 소재로부터 행복의 의미를 재정립했습니다. 2001년, 갓 스무 살이 되어 친구들과 놀기 바쁜 나날이었는데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문장이 있었습니다.

“근대적 행복관에 따르면 행복의 양은 소유의 양에 비례한다. 가능하면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의 행복관은 행복이 소유의 양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질에 달려 있다고 본다.”

눈이 번뜩 뜨였습니다. 이것이 내 인생 모토가 되겠구나 생각했고 곧바로 수첩에 적어놓았죠. “행복은 소유의 양이 아니라 관계 맺음의 질에 있다.” 물론 저는 철학자도 아니고 무소유를 지향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다만 진짜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에도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며 수많은 유명인을 만날 때마다 이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성지 기자로 일했을 무렵, 매달 유명한 연예인, 성공한 기업인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보일까 기대하며 나간 자리였지만 예상은 자주 빗나갔습니다. 제 눈에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쳐 보였고 불안하게 느껴졌고 우울해 보였습니다. 자신의 기사를 쓸 기자를 앞에 두고도 매니저와 비서를 하대하고 감정 조절을 못 하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은 실로 소유의 양에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갈 때, 이 평안한 마음이 얼마나 귀한 감정인지 깨달았고 행복의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2023년은 어떤 한 해가 되길 바라시나요? 행복한 일이 쏟아지고 우울한 일은 생기지 않기를 누구나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가능할까요? 좋은 일만 찾아오는 인생이 과연 존재할까요?

살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소한 행복을 자주 누리는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으면 ‘고맙다’고 인사해주세요. 감사를 전하는 일만큼 충만한 기쁨은 없습니다. 그리고 행복을 비교하지 마세요. 유통기한이 긴 행복을 좇으세요. 소유의 기쁨은 잠깐입니다. 아무리 주머니가 두둑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흐트러지면 결코 평안한 일상을 누릴 수 없습니다. 행복의 초점을 나에게 맞추고, 관계 맺음의 질을 높이세요. 소소한 행복의 순간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힌트를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어줘서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메시지를 보내세요. 어색하다고요? 상대가 당황할 것 같다고요? 기분 좋은 어색, 반가운 당황일 겁니다. 사소한 행복은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