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essay

3년 4개월 만이라지요. 지난 5월 6일, 코로나19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해제되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공식 발표였어요. 뉴스 제목을 보자마자 지난 시간이 머릿속과 마음속을 한순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초현실적인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어디로 간 거야, 내 삼 년 반. 다시 돌려줘요.

신예희

갑작스레 찾아온 팬데믹과 신체적 변화

팬데믹 첫해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뉴스엔 온통 코로나19 이야기뿐이었고, 갑작스레 휴대폰 재난 문자 알람이 울릴 때면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죠. 매일의 확진자 수와 동선을 예민하게 찾아보느라 바빴습니다. 약국 앞에 줄을 서서 마스크를 샀고, 평소보다 더욱 공들여 손을 씻었습니다. 그러니 어지간한 일은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릴 수밖에요. 이런저런 약속도,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도 기약 없이 꿀꺽 삼켰습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나며 이 상황에 슬슬 익숙해질 무렵, 제 몸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꼬박꼬박 찾아오던 생리가 마치 밀물처럼 서서히 빠져나가 버린 것이죠.

말도 안 돼, 벌써?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40대인걸요. 노화로 인한 신체 변화는 그 시기도 정도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생리 역시, 딱 몇 살이 되면 스위치를 눌러서 끄듯이 멈추는 게 아니고요. 50대 후반에도 여전히 생리한다는 사람도 봤고, 30대에 조기 폐경을 맞아 힘들어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하지만 매번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왠지 저는 언제나 그대로일 것만 같았거든요. 어리석게도 그랬습니다. 제 마음과는 상관없이,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아졌습니다. 멀쩡히 소파에 앉아 있다가도 한순간에 열이 올라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창문을 열어젖히고선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혀야 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 열감, 과연 만만찮더라고요. 얼굴은 왜 그렇게 달아오르는지, 마스크를 쓰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수면의 질이 나빠진 것도 문제였습니다. 새벽에 깨어 화장실에 간다는 사람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머리맡에 둔 휴대폰에 손을 뻗어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좌절했습니다. 벌써 일어나버리면 안 되는데, 더 자야 하는데. 하지만 다들 아시죠. 자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 잠들지 못한다는 것. 베개에 머리만 대면 금세 곯아떨어지던, 하루에 여덟 시간씩 충분히 자던 과거의 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요.

그 와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실은 이쪽이 더 문제더라고요. 여느 때처럼 건강검진을 했을 뿐인데, 갑자기 치솟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 상담했고, 고지혈증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폐경기에 흔히 생기는 변화라고 하더라고요. 더불어, 골밀도가 떨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조언도 함께요. 하나같이 생소한 이야기였습니다.

일상에 새로운 루틴 더하기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갱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 중년 여성 캐릭터가 갑자기 벌컥 화를 내거나 우울해하는 모습으로 그리는 정도뿐이죠. 이 시기를 먼저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충분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보다는 좀 더 현실적으로, 실용적으로 대비할 수 있었을 텐데요. 그래서 제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기로 했습니다. 가족과 친구, 동료, 누구에게든요. 몸과 마음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여성의학과 전문의와 어떤 내용을 상담했는지 등등. 그러자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습니다. 실은 나도 그랬어, 이렇게 견디고 있어. 개인의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우리 모두의 일이 되니 왠지 힘이 생겼습니다. 혼자가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소속감마저도요.

힘을 내자, 몸을 움직여보자! 그렇게 생각하니 운동이 절실해졌습니다. 팬데믹 기간에 체중이 불어난 사람이 많다는데 저도 예외가 아니거든요. 갱년기 탓을 하고 싶지만, 배달 음식을 달고 산 게 더 큰 이유일 것 같습니다. 어찌나 알차게 살이 붙었는지 계단 몇 개 오르는 정도로도 숨이 차서 심장이 쿵쿵거릴 정도였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왕이면 오늘의 상태를 최대한 좋게 끌어올린 후 오래도록 유지하는 쪽이 낫겠더라고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만큼, 남은 인생도 멋지게 갱신하고 싶다고요.

냉큼 헬스장을 찾아 PT 수업에 등록했습니다. 얼마나 오랜만에 하는 운동인지 모르겠어요. 그러잖아도 힘든걸, 마스크까지 쓰고는 더 못할 거라며 절레절레 하기만 했거든요. 하지만 이미 많은 이가 마스크를 쓴 채로 열심히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조금씩, 천천히, 살살. 그게 벌써 1년전의 일입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일주일에 이삼 일씩 꾸준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좀 더 어렸을 땐 체중 변화에만 목숨 걸었는데, 이젠 체지방과 복부지방률, 근육량이 더 신경 쓰입니다. 살기 위해 하는 운동이라 그렇겠지요.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 걱정하는 대신 제 몸의 안과 밖을 생각하며 저를 더욱 꼼꼼히 살핍니다. 그랬더니 희한하게도 운동에 대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더라고요. 트레이너와도 미용보다는 삶의 질, 지속 가능성에 관한 대화를 자주 나눕니다. 하루 이틀 하고 말 게 아니니까, 새로이 갱신한 인생에 운동이라는 루틴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거니까요.

그래도 맞이할 새로운 일상

매 끼니 역시 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재료는 더 자주 먹고, 어떤 건 이제 안녕입니다. 그동안 맛있게 즐겼으니 보내줄 때도 되었죠, 뭐. 덕분에 콜레스테롤과 혈당 수치가 좋아져 의사 선생님에게 칭찬받았습니다. 마흔 살이 훌쩍 넘었는데도 칭찬 듣는 건 여전히 좋더라고요. 후후.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습니다. 로봇이 아닌걸요. 여전히 일상 속엔 스트레스가 한가득입니다. 마음속에 답답함이 쌓일 땐 운전이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곤 해요. 면허만 따 놓고선 15년 넘게 미루다가 마흔 살 되던 해에 용기 내어 운전을 시작했는데, 삼 년쯤 지나 슬슬 초보 딱지를 떼도 되겠다 싶을 무렵 갑작스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진 겁니다. 1인가구라 종종 외롭다고 생각하는데, 팬데믹 기간엔 고립감을 더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쩌면 우울감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시기를 돌아보니, 새삼 달팽이처럼 집 안에 콕 박혀 있는 시간이 많았더라고요. 그래서 억지로라도 저를 일으켜 세워, 틈나는 대로 훌쩍 드라이브를 떠났습니다. 가깝거나 살짝 먼 곳으로 당일치기 여행도 자주 다녔고, 여유가 있을 땐 하루 이틀쯤 머물기도 하고요. 여차하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서서히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갱년기 증세를 받아들이는 데도 도움 되었고요. 새삼 운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몇 년간 계속된 어지럽고 뒤숭숭한 일들을 뒤로하고, 이제부턴 새로운 일상을 시작합니다. 인간에게 회복탄력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하지만 좋지 않은 옛 습관에도 분명 탄력성은 있을 거예요. 꼼꼼히 손을 씻는 게 다시 귀찮아진다든가, 무심히 기침과 재채기를 한다든가, 이제 좀 살 만하니 슬슬 운동하기 싫어진다든가, 이런 식으로요. 정크푸드와 배달 음식도 은근슬쩍 생각나기도 하고요.

스스로에게 큰 소리로 말해봅니다. 안 될 말이지, 정신 차려야 해! 위기의 시간 이후 맞이하는 새로운 일상은 전보다 더욱 건강한 루틴으로 채워나가겠다고 다짐합니다. 정성스레 갱신하는 마음으로요.

# 신예희

25년째 프리랜서로 다양한 매체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즐겁고 쾌적한 지속 가능한 삶을 꿈꾼다.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마침내 운전> 등의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