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후변화와 관련된 가장 큰 화제는 무엇일까? 여전히 몇몇 사람은 북극의 얼음이 녹아서 북극곰이 죽어가고 있다는 문제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혹은 이대로 지구가 점점 더워지면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녹고 바닷물의 부피가 늘어나 온 세상이 물에 잠긴다는 종말론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 곽재식
변화의 의지를 담은 제도
기후변화 종말론은 먼 옛날 사람들이 죄를 많이 지으니까 제우스, 포세이돈 같은 신들이 대홍수라는 징벌을 내려 세상을 쓸어버렸다는 등의 옛 신화와 닮은 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쉽게 와닿는 이야기였다.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부족했던 1990년대 무렵에는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기후변화 종말론이 상당히 자주 언급되곤 했다.
나는 2023년,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북극곰이나 종말론이 아니라 ‘탄소국경조정제도’라고 생각한다.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영어로 표기하면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고 줄여서 ‘CBAM’이라고 쓰는데, 보통 C-BAM이라고 끊어 읽는다. 영어 ‘bam’은 무엇인가가 펑터지거나 꽝꽝 때리는 소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C는 carbon, 즉 탄소를 나타내므로, C-BAM을 한국어로 옮기면 ‘탄소 꽝’, ‘탄소 펑’이라고 할 수 있다. 탄소에 관한 새로운 제도를 마련해 실시하려면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므로 폭탄이 꽝 터지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는 뜻을 담은 작명인 듯하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유럽에서 2023년 10월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제도다. 어떤 내용을 담았기에 그 정도로 강렬한 이름을 붙였을까?
탄소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연료에 들어 있는 원소다.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대표적인 연료에 탄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나무를 잘라서 태운 숯은 아예 탄소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탄소 원소가 들어 있는 연료를 태우면 이산화탄소라는 물질이 나오는데,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지구가 점점 따뜻해진다. 이것을 이산화탄소의 온실효과라고 한다. 온실효과가 적절하면 지구의 기후를 살기 좋게 유지할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아지면 기후변화가 심해져 사람이 사는 데 피해를 입힌다. 탄소를 기후변화의 원인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유럽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 산업에 여러 가지 규제를 적용한다. 다시 말해 유럽 회사들은 제품을 만들면서 기계를 돌릴 때 연료를 많이 사용하여 이산화탄소를 많이 내뿜는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유럽 정부에 지불해야 한다. 그만큼 유럽 회사들은 비용 부담에 시달리게 되고 사업은 힘겨워진다. 유럽 당국은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해서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서 기후변화를 늦춰보겠다고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기후변화는 지구 전체의 문제다. 유럽 업체들이 열심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서 기후변화를 약화하면 유럽만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기후변화의 피해를 덜 받게 된다. 반대로 유럽 업체들이 아무리 열심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였다고 해도, 유럽 바깥의 다른 나라 회사들이 여전히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면 지구 전체의 기후변화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비용을 많이 치르며 고생한 유럽도 다 같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입기는 매한가지다.
유럽에 유리한 탄소국경조정제도
하지만 왜 하필 지금 이 시기에 유럽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하는지를 살펴보면 여기에는 유럽 산업과 유럽 경제에 대한 면밀한 고려의 결과라는 다른 의도도 같이 드러난다. 다시 말해 탄소국경조정제도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유럽 당국의 경제적인 유리함을 위한 제도라는 점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유럽은 18세기 말부터 산업혁명을 시작하면서 세상 그 어느 지역보다 먼저 기계를 가동했기 때문에 많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었다. 한국이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을 때부터 유럽은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지난 시대 유럽이 선진국, 강대국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 중 일부는 지금도 공기 중에 쌓여 있을 것이다. 그 시기 변변한 공업 생산 능력이 없었던 조선은 이산화탄소를 거의 배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유럽 회사들이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해 미안하다면서 조선에 돈을 준 적이 있는가?
최근에는 세계경제의 발전으로 상황이 또 달라졌다. 과거에는 유럽이 발달된 기술을 갖고 앞서 나갔던 많은 분야의 산업이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성장중이다. 과거에는 유럽에서만 만들 수 있었던 제품을 이제는 다른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도 잘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최근 발표된 자동차산업 통계를 보면, 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 숫자가 전통의 자동차 강국인 독일에서 생산된 자동차 숫자보다 더 많은 해도 있었다. 한국, 중국, 인도에서 생산하는 자동차가 프랑스, 영국보다 많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자동차 외에도 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만들어서 유럽 제품을 누르고 유럽 내부에서 더 잘 팔리는 아시아, 아프리카 제품은 매우 많다. 이렇게 되면 유럽 회사들은 살아남기 어려워진다. 어떻게 보면 유럽 바깥의 개발도상국들이 돈을 벌 차례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의 첫 번째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는 제품들은 대체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제품이다. 시멘트, 철강, 비료, 알루미늄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런데 한 가지 같이 살펴볼 특징이 있다. 이런 제품들은 공교롭게도 과거에는 선진국이 대단히 앞서 나가는 분야였지만 요즘 들어 개발도상국들이 급격히 추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비료 산업이나 알루미늄 산업은 과거 한국이 상당한 수준으로 규모를 키운 적이 있었던 분야다. 그러다 최근 개발도상국의 추격 때문에 한국 비료 산업과 알루미늄 산업은 많이 약화되었다. 그에 비해 한국의 철강이나 시멘트 공업은 아직 경쟁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시행되면 바로 이런 분야에서 한국 업체들은 유럽에 돈을 내며 물건을 팔게 된다.
현실적 문제가 된 기후변화
탄소국경조정제도에서 우리가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사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관리하는 문제에서 그렇게까지 뒤처져 있는 나라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탄소배출권거래제는 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측정해 돈을 내거나 받는 제도인데, 한국은 이 제도를 세계적으로 무척 앞서서 시행한 나라에 속한다. 그런데 유럽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가 시행되면, 유럽의 검증 방법에 따라 유럽 제도를 준수해야만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대가를 치렀다는 점을 증명할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그동안 한국이 탄소배출권거래제도를 이행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유럽에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한국 업체들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은 노력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유럽에 다 내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 제도와 유럽 제도를 조율해 한국의 이산화탄소계산법을 유럽에서도 받아주도록 당국이 협의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의 외교 통상 당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나는 한국이 단순히 노력하는 수준을 넘어서 더욱더 적극적으로 사명감을 갖고 애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미 우리 산업과 경제의 바로 눈앞까지 들어와 있다. 이제 기후변화는 지구가 아프니까 지구를 지켜주어야 한다는 막연한 느낌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세계가 기후변화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식으로 따져나가고 있는지 면밀히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에 근거해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기업을 유지할 수 없고 일자리도 지킬 수 없게 된다. CBAM은 북극곰이나 종말론 같은 이야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기후변화의 낭만주의 시대는 이미 끝이 났으며, 지금은 기후변화가 현실의 경제문제가 되었음을 알리는 소리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