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essay

인류가 만든 혁신적인 도구들은 우리의 삶을 바꾸어왔고, 지금도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혁신은 지나고 나면 당연한 현상으로 느껴지나 처음에는 낯설고, 이해되지 않으며 그 파급효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이승환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을 이용해 이메일(e-mail)을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1년 동안 우체통에 편지 봉투를 넣을 일이 몇 번 없는데, 이메일을 사용할 일이 있을까?’라는 인식이 만연했다. 인터넷, 이메일, 데이터를 저장하는 메모리(Memory), 온라인에 사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Community)라는 말도 대중에게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에 ‘앞으로 20년 뒤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기기로 인터넷에 접속해 물건을 주문하면 당일 혹은, 다음 날 바로 배송되는 시대가 온다’라고 말한다면 모두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봤을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과 이메일 없이 일하고 노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온라인 주문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일이 지난 30년간 일어났고, 우리는 이를 인터넷 혁명이라 부른다. 이제 우리의 삶을 뒤바꿀 또 다른 혁신, 초거대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새로운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본격화된 AI 시대

지난 인터넷 혁명의 시간 동안에 인류는 거대한 데이터를 축적해왔고 이를 학습하고 추론할 수 있는 수 있는 초거대 AI(Hyper-scale AI)를 개발했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 간 정보전달의 통로 역할을 하는 시냅스가 있으며, 초거대 AI는 이러한 인간의 뇌 구조를 모방하여 대규모 데이터 학습을 통해 지적 능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AI를 활용한 챗봇은 과거에도 존재했으나 인간과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은 어려웠고, 인종차별 등 편향성 문제가 계속 지적되었다. 하지만 챗GPT의 등장과 함께 AI를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바뀌었다. 챗GPT는 사람이 채팅하듯 텍스트로 질문을 하면 실제 사람과 대화하듯 텍스트로 자연스러운 답변을 생성한다. 초거대 AI로 무장한 챗GPT는 미국에서 대학교에 입학할 때 응시하는 SAT 시험의 ‘읽고 쓰기 부문’에서 800점 만점에 710점, ‘수학 부문’에서 800점 만점에 700점을 받았다. 미국 의사면허시험(USMLE)도 높은 점수로 합격했으며, 미국 변호사 시험에서도 상위 10%를 차지했다. 똑같이 챗봇이라 부르지만, 전혀 다른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된 것이다. 챗GPT는 2022년 11월에 출시되어 두 달 만에 가입자 1억 명을 모집했고, 2023년 8월 기준 사용자 수가 15억 명에 달하며 이는 인터넷 혁명의 시대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가입자 증가 속도다. 2023년 3월, 챗GPT는 타임지(TIME)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AI가 만든 거대한 변화의 물결

챗GPT를 필두로 초거대 AI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생성 AI(Generative AI)서비스가 계속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가 새로운 생산성의 시대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텍스트를 생성해주는 챗GPT만 있는 게 아니다.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ey)는 그림(Image)을 그려주고, 젠(Gen)이라는 생성 AI는 영상(Video)을 만들어준다. 또 생성 AI 스카이박스(Skybox)는 가상공간을 생성하며, 스튜디오 디아디(Studio DID)는 가상인간을 만들고, 사운드로(Soundraw)는 음악도 제작해준다. 이제 인류는 자연어(Natural Language)로 모든 디지털 요소(Element)를 더 쉽고 빠르고 다양하게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유니티(Unity)의 마크 위튼 부사장은 “생성 AI는 강력한 기술 집합체로 생산성을 100배 높인다”고 언급했으며 리플릿 CEO 암자드 마사드는 “생성 AI로 SW개발자의 생산성이 10배에서 200배까지 향상되고 1인 유니콘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생성 AI로 생산성을 100배 이상 높이는 ‘슈퍼 개인(Super Individual)’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슈퍼 개인은 생성 AI를 활용하여 비트(bit)를 자유자재로 다루며 디지털 요소를 만들고, 생산성을 극강으로 높이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다.

미국에 거주하는 브레트 쉬클러는 생성 AI로 오랫동안 갈망했던 작가의 꿈을 이루었다. 챗GPT로 이야기를 만들고 그림을 그려주는 생성 AI인 미드저니를 활용해 몇 시간 만에 어린이용 그림책 《현명한 꼬마 다람쥐》를 완성해 아마존에서 판매 중이다. 캐나다에 사는 엘비스 딘은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하여, 웹툰 《염소들(Goats)》을 발표했다. 《염소들》은 수준급 작품으로 주목받으며, 2022년 8월부터 북미용 네이버 웹툰에 연재 중이다. 일본에서도 생성 AI 미드저니를 활용해 제작한 만화책 《사이버펑크 모모타로》가 출간됐다.

37세 작가 루트포트(Rootport)는 손으로 만화를 그려본 적이 없으며 120페이지 분량의 컬러 만화를 제작하는 데 6주가 걸렸다고 밝혔다. 루트포트는 “만약 이를 일일이 손으로 그렸다면 1년 넘게 걸렸을 것”이라 언급했다. 이미 고인이 된 만화가의 작품이 인공지능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 만화계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의 대표작이자 ‘의학 만화의 시초’로 불리는 작품인 《블랙잭》이 챗GPT 등 생성 AI의 도움을 받아 주간 <소년 챔피언>에 연재된다. 고인이 된 데즈카의 장남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인 데즈카 마코토 씨가 AI 프로젝트를 주도했으며 GPT는 200화가 넘는 원작의 줄거리, 세계관, 주제, 등장인물 간 관계 등을 학습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만화의 그림은 이미지 생성 AI인 스테이블 디퓨전(Stable Diffusion)을 활용했는데 데즈카의 생전 작품에 나오는 특유의 캐릭터 표정, 붓질 등 화풍을 학습했다고 한다. AI를 활용하면 생산성을 100배 높이고, 불가능한 시도를 할 수 있으며, 1인 유니콘이 될 수 있다는 말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AI로 인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고, ‘슈퍼 개인’이 만드는 새로운 미래는 이미 시작되었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AI

AI는 전 산업과 사회에 영향을 미치며 가치 창출 방식을 바꾸고 있다. 미디어 기업 퓨처리는 2023년 3월에 세계 최초로 AI가 운영하는 라디오 방송국을 선보였다. AI로 지역 뉴스, 교통정보, 날씨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뒤 GPT로 방송용 대본을 작성해 AI 음성으로 방송을 송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AI DJ를 프로그램 진행자로 사용하거나 기존 DJ의 목소리로 AI를 훈련시킬 수 있다.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 기업 페이블 스튜디오(Fable Studio)는 AI로 만든 <사우스 파크(South Park)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사우스 파크>는 인기 있는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이다. AI가 TV 시리즈를 제작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이다.

스테이블 디퓨전의 개발사 스태빌리티AI CEO 이마드 모스타크는 “생성 AI를 활용해 4억 원이 소요되는 영화 촬영 비용을 8만 원으로 해결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나라 AI 스타트업 웨인힐스는 100% 생성 AI로 제작한 영화를 대규모 시사회를 거쳐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논의중이다. 2023년 4월에는 뉴욕에서 세계 최초로 AI 패션위크가 개최되었다. AI 패션위크는 여러 지원자가 AI를 이용해 생성한 컬렉션 이미지를 취합해 온라인으로 전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가 자격에는 제한이 없으며 400명이 지원했다. AI 패션위크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은 참여자들의 투표와 패션 전문 심사위원단의 심사를 거쳐 최종 3명의 우승 디자이너를 선정했으며 선정된 작품은 실제로 생산할 예정이다.

법률 시장에서도 AI로 지각변동이 시작되었다. 글로벌 법률 정보기업인 렉시스 넥시스는 2023년 5월, 렉시스+AI 출시를 알린 후에,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적용 국가를 늘리고 있다. 렉시스+AI는 법률 시장 혁신을 위한 특화 AI 생성 플랫폼으로, 법률 초안 작성, 핵심 요약, 대화형 검색을 지원하며, 프롬프트를 활용하면 언어와 어조도 변경할 수 있다. 또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민사사건의 핵심 내용을 알려달라고 요청하면, 답변과 함께 관련 판례와 출처를 제공하며, 고객이 문의한 계약서를 업로드하면 법규 위반 조항을 확인할 수도 있다.

챗GPT는 소프트웨어를 넘어 로봇 등 하드웨어와 결합하며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가 개발한 2세대 로봇 개 ‘유니트리 고2’는 챗GPT와 원격 센싱 기술을 탑재해 사용자를 따라다니고,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며 사용자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중국 기업 커이테크(KEYi Technology)에서 개발한 로봇 루나는 반려동물 같은 지능형 로봇이다. 소비자들이 움직임과 반응을 통해 놀이하듯 상호작용하고, 챗GPT와 연동되어 다양한 외국어로 소통하며 외국어도 공부할 수 있다.

의료계에도 불어오는 AI 바람

의료산업에도 AI 바람이 불고 있다. 현직 의사이자, 《의료계의 AI 혁명: GPT-4와 그 너머》의 저자이며, 하버드대학 교수인 아이잭 코핸 박사는 “GPT-4는 의사 면허 시험을 통과한 훌륭한 수험생이며, 뛰어난 의료전문 번역가”라고 설명한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초등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설명해주는 등 환자를 응대하며, 든든한 의사 조수 역할도 하고, 장문의 의학 논문도 순식간에 요약하고 분석해준다는 것이다. 또 코핸 박사는 GPT-4가 임상 진단 능력도 있는지 시험해봤는데 발병률이 10만 분의 1로 희귀한 질환인 ‘선천성 부신 과형성’을 진단해냈다고 한다. 자율주행이 시작되면 자동차를 포함한 이동체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원격의료도 진행될 것이며, AI는 의료 과정 전반에 접목되며 생산성을 높이고 더 나은 의료 경험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밝은 미래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AI에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이라고 일컫는 환각 현상이 존재하고, 저작권, 일자리 대체, AI격차 등 다양한 문제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중요한 건 과거 수많은 도구의 탄생과 진화가 그러했듯이 AI 혁명으로 인한 미래 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AI로 가치 창출 방식이 완전히 바뀌고 새로운 미래가 열리고 있다. AI로 한계를 극복하고, 생산성을 100% 높이는 ‘슈퍼 개인의 탄생’과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의료 혁신의 탄생’을 기대해본다.

# 이승환

국회미래연구원에서 AI, 메타버스 등 신기술을 연구한다. (전)삼성경제연구소, KT전략기획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등에서 근무했으며 대통령 직속 기관 및 중앙부처 정책자문 활동에도 참여했다. 2020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