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이 밝았습니다. 올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세우고 의욕이 샘솟는 시기이지만, 저의 일상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루틴으로 만들어온, 심신이 편안한 하루를 이어나가는 게 전부니까요. 자신만의 시간표를 가지고 산다는 것. 흔들리는 순간에도 나를 잃지 않는 온전한 방법입니다.
글 신미경_수필가
무기력이 덮칠 때면 ‘뭐라도 하면 뭐든 생긴다’라고 저를 다독입니다. 삶에 불안감이 느껴질 때는 ‘할 일이 있다는 자체가 주는 안정감’을 믿고 언제나 고민은 적게, 행동은 바로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계속해나가는 자체가 매우 어렵죠. 사실 좋아하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예컨대 저는 독서를 무척 좋아해서 어떤 보상을 약속하지 않아도 하루 종일 책을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독서는 새해 다짐 중 하나일지도 모르죠. 반면에 저에게 운동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요가를 수련한 지 이제 4년째가 되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시간이 아니라 요가원에 간다는 자체로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저를 다독이고 있죠. 그렇게 기계적으로 운동하다 보니 어느새 저항감은 사라지고 저도 모르는 사이 예전보다 혈액순환이 잘되는 유연한 몸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이만큼 변했구나 감탄하고 있죠.
균형 잡힌 삶
어떤 습관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은 나의 유전자가 거부하고 타고난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이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부분임을 의미합니다. 꾸준한 운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처럼요. 대부분의 사람은 균형 잡힌 삶이란 유니콘과 같아서 어떤 식으로든 몇 가지에 치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죠.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하지만 몇 가지라도 영양소가 고루 든 밥상이 편식이나 인스턴트 음식보다 건강한 것처럼, 내 삶에 무엇이 불량식품인지 골라내고 바꿔나가려고 합니다. 그 자체가 사는 재미이기도 하고요. 이때 루틴은 습관 만들기에 최적화된 기술이지요.
루틴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삶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영어 단어를 하나씩 외우는 시간을 가지면 어느새 지난해보다 365개 단어를 더 알게 되는 거죠. 작은 부분일지라도 성장과 긍정적인 변화를 느끼는 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또 하나는 틈새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업무든 육아든 어떤 책임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 때 짬을 내어 차 한잔을 마시거나 산책이 필요한 것처럼요. 번아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휴식하는 시간을 일정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점이죠. 이쯤 되면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왜 이렇게 많은지 고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하루에 하고자 하는 여러 요소가 골고루 자리 잡히는 과정이 끝나면 생산적인 일을 하고 휴식하는 일상이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언뜻 제자리걸음 같아 보이지만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분명 옵니다. 물론 저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연스럽게 이 모든 활동을 당연하게 하고 있습니다. 비로소 습관이 된 거죠.
있는 내 모습 그대로는 자연스럽고 편안할 수 있지만 원석보다는 갈고닦아 세공한 보석이 객관적으로 더 아름다워 보입니다. 자신이 바라는 삶이 있다면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매일 하는 수련에 있을 뿐, 지름길은 없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경우도 흔치 않아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매일 정진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적어도 삶의 의미를 찾아 괴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할 일을 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성실히 살아가는 자체로 충분해지니까요.
목록 작성이 우선
책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 목록 만들기에 열광한 철학자와 작가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철인왕과 좋은 삶의 특징을 목록으로 작성했고, 작가 수전 손택 역시 강박적으로 목록을 만든다고 했죠. 움베르토 에코는 ‘목록은 문화의 기원이다’라고 말했다죠. 그는 『궁극의 리스트』라는 책을 쓰기도 했을 만큼 목록화하는 것을 꽤 즐겼습니다. 제게도 목록은 생각을 정리해주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루틴을 만들고자 한다면 일단 써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써보면 알게 되죠. 제 경우 고민이 많을 때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쓴 다음 들여다보면서 해결책을 찾는 편입니다. 저는 처음 일상 시간표를 구상하면서 삶을 다섯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어요. 바로 ‘생활-건강-일(돈)-공부-취미’였습니다. 큰 카테고리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써보았지요. 생활에 있어서는 가볍고 효율적인 방식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필요한 것만 가지고 정돈된 일상을 살며 낭비를 줄이는 생활 규칙 몇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격식과 비격식처럼 용도별 옷차림을 정해 그만큼만 가지고 있기, 냉장고에 필요한 것만 들어 있게 하는 장 보기, 평일의 간단 청소와 주말의 꼼꼼 청소처럼 위생적인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청소 주기에 대한 것이었죠. 실행에 중점을 두고 무엇을 언제 할지를 정해 표로 정리했습니다. 이는 얼핏 평범한 일처럼 보이지만 저에겐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며 오랫동안 연구하며 다듬어온 삶을 유지하는 기본이기도 합니다. 목록을 쓰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보이고 범위를 정하는 기준을 알게 됩니다. 목록을 보면 삶의 복잡함, 부족함이 보이고 이를 정리할 수 있어요. 제 경우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런 마음이 드는 순간 목록이 완성됩니다.
본질을 가꾸는 건강법
저는 삼십 대 초반에 번아웃을 겪었고, 크게 아팠습니다. 치료를 받고 1년여 동안 휴식을 해야 할 정도였어요. 원인을 분석해보니 불규칙한 생활 습관, 과도한 업무, 인정욕구까지 더해져 저를 병들게 한 게 아닐까, 그런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워라밸을 무시한 결과였죠. 헨리 데이 비드 소로는 책 『월든』에서 “여러분은 병들 날에 대비해서 돈을 모으려고 노력하다 병이 들고 만다. 낡은 장롱이나 벽 뒤에 숨겨둔 양말 속, 또는 좀 더 안전한 벽돌로 지은 은행에다 넣어둘 돈을 벌다가 병들고 만다”라고 말했죠. 무엇이 삶의 우선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저의 건강 루틴은 보약, 영양제처럼 특별한 수단에 기댈 필요는 없었습니다. 바른 생활만이 저에게 좋은 컨디션을 안겨주었으니까요.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기, 규칙적인 운동과 영양가 있는 제철 음식 먹기, 업무 중간중간 휴식 취하기. 마치 교과서에나 등장할 법한 모범 답안처럼 살아가게 된 후로 저는 비교적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편안한 생활은 몸에 독이되기 마련입니다. 계단 오르기, 걷기, 의자에 오래 앉아 있지 않기, 무엇보다 바른 자세 유지하기. 이러한 생활 습관은 흔히 권장하는 부분이지만 실행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저는 운전하지 않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가졌지만 수시로 일어나려고 합니다. 우선 주변 환경부터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바른 자세는 의식적으로 노력해 다리 꼬지 않기를 이뤄냈고, 요가 수련이 거듭되면서 코어에 점점 힘이 생겨 허리를 펼 수 있게 되었죠. 어떤 것도 한 번에 되지는 않았습니다. 될 때까지 계속하는 방법은 역시 기록입니다.
이 모두는 건강 기록부라는 표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한 줄씩 점검하는 표로 몇 시에 일어나고 잠들었는지 세끼 무엇을 먹었는지 간략하게 작성하고 걷기, 모닝 요가, 운동 수업 참석 여부, 간단한 마사지, 샤워, 여성호르몬, 건강 관련 특이 사항(작은 뾰루지처럼 거슬리는 부분도 포함해 메모로 정리), 컨디션이라 이름 붙인 그날의 의욕 지표까지 표 한 줄에 한 칸 한 칸 채워나가며 관리합니다. 매우 세부적이어서 다소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으나 대부분 O, X로 표기하고 숫자로 기록하는 등 한눈에 볼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한, 하지만 따져보면 굉장한 정보를 담고 있는 건강 노트입니다. 몸 상태를 기록하다 보면 내가 왜 몸이 안 좋은지, 기분이 왜 별로였는지, 의욕에는 리듬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습관을 들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기록입니다.
얼마 전부터 건강 코치로 함께하고 있는 스마트워치를 손목에 차고 건강 지표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표로 정리한 간단한 기록이 다소 원시적이라면 전문 기계의 도움을 받으니 동기부여가 더 잘 되고 데이터 역시 자세해 마음에 듭니다. 무엇보다 제가 수기로 정리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편하죠. 하지만 저에게 스마트워치는 어디까지나 보조 수단이며 제 손으로 입력하는 기록을 멈추지 않습니다. 직접 기록해야만 평가와 반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펜으로 글을 쓰든 키보드로 입력하든 손으로 생각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게 계속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시간 나눠 쓰기의 마법
저는 하루를 새벽 5시 30분에 시작합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날 때도 많지요. 9시부터 6시까지 근무하는 회사원이자 수필가, 자유기고가, 때때로 강연을 진행하며 여러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개인 공부까지 더해져 저의 하루는 자신과의 약속으로 가득합니다. N잡러로 살며 공부까지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제가 욕심이 많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지금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일 뿐 큰 부담이 없고, 시간 역시 분초 단위로 쪼개 쓰지 않죠. 시간의 성격을 나누고 일에 우선순위를 확실히 구분해 최소 분량을 소화해내는 정도로 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하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창조적인 아침과 쉼이 있는 저녁이죠. 새벽에 일어나게 된 계기는 간단했습니다. 퇴근하면 피로하기 때문에 저녁에는 제가 하고 싶은 글쓰기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피로가 풀린 아침을 활용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피로함이 쌓인 시간에는 피로 풀기. 이 간단한 규칙만으로 여러 가지 일을 소화하고 있죠. 그리고 틈새 시간을 활용해 투자 공부를 하거나 영어, 한자 등을 익히고 있습니다. 물론 직업인으로서 업무 시간에는 충실히 맡은 일에 임하고요.
취침 시간을 30분 앞당겨 10시에 잠들고, 일어나는 시간도 30분 앞당겨서 지금의 기상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사람이지만 아침의 기적을 운운하지는 않습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활동일 주기가 다르다고 하니까요. 바로 ‘크로노 타입’이라 불리는 것인데요. 누군가는 저녁에 생산력이 더 좋을 수 있고, 아침에는 피로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타입인지 파악한 다음 시간을 나눠 쓰는 것은 루틴을 만들 때 중요한 점입니다.
저의 과거는 앞서 말했던 모든 행동의 정반대였습니다. 건강을 잃어보았고, 업무에 만족하지 못했으며, 언제나 지금이 아닌 먼 미래의 이상적인 내 모습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공허함을 크게 느꼈고, 낭비벽이 심했죠. 달라지고 싶었을 때 아주 작은 것부터 바꿔나갔습니다. 그리고 기록하는 방법으로 습관을 들였죠.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나를 잘 돌보며 사는 루틴을 만들어보세요. 작게는 올바른 양치질이 있을 테고, 크게는 업무나 인간관계처럼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루틴이 있을 테지요. 저는 언제나 작게 시작합니다. 루틴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마법이 아니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점점 크게 만드는 편이 언제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힘이니까요. 루틴으로 습관 만들기에 지치는 순간이 왔다고요? 그렇다면 잠깐 쉬어주세요. 내일부터 또다시 시작하면 그만이니까요.
# 신미경
단순하고 건강한 일상의 경험을 전하는 수필가. 균형 잡힌 하루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 『나를 바꾼 기록 생활』,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