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시대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이 무너진 시간이었죠.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의 바탕이 되는 가정에서도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글 구승준_번역가·칼럼니스트
가장 큰 변화는 재택근무
올해 5월 2일부터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해제되었는데도, 상당수가 여전히 마스크를 쓰겠다고 합니다. 아직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마스크로 얼굴 일부를 가리니 외모가 더 좋아 보이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죠. 이를 두고 ‘마기꾼(마스크 사기꾼)’이라고 하고, 반대의 경우 마스크를 써서 좋은 외모가 가려진다고 해서 ‘마해자(마스크 피해자)’라고 합니다. 마스크를 쓰니 화장이나 면도를 하지 않아도 돼 편하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마스크를 쓴 부분은 제외한 채 눈 주위에만 하는 ‘마스크 화장법’이 포털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인기 검색어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재택근무를 하면 마스크에 대한 고민조차 하지 않아도 됩니다.
코로나19 시국에 경험한 가정생활의 큰 변화는 재택근무입니다. 밀집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근무하다 보니 집단감염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재택근무를 실시하는 기업이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한번 재택근무를 경험한 한국의 사무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그 달콤함에서 못 빠져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은 만큼 ‘단계적 일상 회복’ 차원에서 재택근무를 여전히 시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6월 8일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에서 실시한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른 재택근무현황 조사’에 따르면 한국 100대 기업 중 응답기업의 72.7%가 여전히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끝내고 출근을 독려하는 움직임이 보이자 근로자들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출근 ‘지옥철’을 겪고 나면 아침인데도 이미 진이 빠집니다. 근로자들은 피로감이 덜한 상황에서 편한 복장으로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면 효율이 더 올라간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기업 경영자의 입장은 다릅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으니 의사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구성원 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아 회사의 집단창의력과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재택근무에는 단점도 있습니다. 다른 가족 입장에서는 집에서 컴퓨터 앞에만 있는 사람이 야속해 업무 시간에 육아나 가사를 부탁하기도 합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일에 전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입장이 됩니다. 재택근무를 둘러싼 업종 간 입장 차이도 있습니다. 직접 고객을 대면해야 하는 병원, 숙박·음식업과 같은 서비스업이나 출근을 해야 일이 이루어지는 생산직은 재택근무가 애당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이유로 인해 재택근무는 팬데믹 이후에도 계속되겠지만, 재택근무와 출근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형태로 진화해나갈 방향성이 크다고 기업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2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자 중 ‘일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33.5%로 2년 전 조사(42.1%)보다 8.6%포인트 감소했습니다. ‘일보다 가정이 우선’이라는 응답은 18.3%로 2년 전 조사(13.7%)보다 4.6%포인트 늘었습니다. 구인구직 플랫폼인 ‘사람인’에서 실시한 올해 6월 조사에 따르면 성인 2명 중 1명은 입사기업을 선택할 때 재택근무 여부를 본다고 했습니다. 출퇴근 등 이유가 있었지만, ‘육아와 돌봄을 병행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도 21.9%나 차지했습니다.
재택근무를 선호하는 경향은 ‘회사 중심, 집단 중심’에서 ‘가족 중심’으로 가치관이 변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심리학자 조긍호 서강대 교수는 한국인의 특징 중 첫 번째로 ‘화목한 가족애’와 ‘가족중심주의’를 꼽았으며, 국내외 다른 학자들도 공통적으로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바꾼 가정의 소비 패턴
재택근무 등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정의 소비 패턴도 바뀌었습니다. 올해 4월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1년의 OTT 서비스 구독이 71%나 늘어났다고 합니다. 이 중 40대는 94%, 50대는 110%, 60대 142%나 늘어 났습니다. 이 통계가 의미 있는 것은, 장년층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있으며 소비의 주축이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이전에는 디지털 콘텐츠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이 바로 장년층과 노년층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오히려 트렌드를 주도하는 소비자로 부상했습니다. 참고로 OTT 서비스는 개방된 인터넷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 영화 등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인데 대표적인 예로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가정 소비 패턴의 또 다른 변화는 ‘라이브 커머스(Live Commerce)’의 성장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라이브 커머스는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유통방식인데, 생방송(live)과 전자상거래(commerce)의 합성어로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올해 4월 서울시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라이브 커머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배달앱으로 시켜 먹는 음식보다 깨끗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 할 수 있습니다. 전체 품목 중에 식품이 54.8%, 농수산물이 23.2%로 둘을 합치면 78%나 되기 때문입니다. 라이브 커머스에서는 특히 ‘밀키트’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19년 1,017억원이었지만, 2022년 말까지 3,363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입니다. 손질된 재료와 양념을 세트로 제공하기에 편리하고 신선합니다. 필요한 양 만큼만 들어 있어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대한 부담도 없습니다. 라이브 커머스는 홈쇼핑과 달리 쇼호스트와 소비자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내가 쓴 댓글을 쇼호스트가 그 자리에서 읽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바로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는 진입장벽이 낮아 검증되지 않은 업체에서 상품을 판매하는 경우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오히려 줄어든 이혼
한편 팬데믹으로 인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장기 휴원함에 따라 부모들은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았습니다. 특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에게 치명적인 타격이 있었고, 이는 곧 부부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상담소에서는 이혼 상담이 폭주했으나 실제 이혼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친 2020년에는 전년에 비해 이혼율이 3.9%감소했고, 2021년에도 역시 같은 추세를 이어가 4.5%나 감소했습니다. 이는 한국만의 특수한 가족관계가 가장 큰 원인을 차지합니다. 한국의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높은 달은 설날, 추석 등 명절이 끝난 후입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고향에 가서 제사를 지낼 일이 없다 보니 명절 스트레스로 인한 부부싸움도 줄었다는 것입니다. 만나지 않다 보니 명절 노동도 없고, 고부갈등, 장서갈등도 없습니다. 회사에서 회식이나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부부간 갈등이 줄었다는 것도 원인입니다. 동창회에 가서 우연히 ‘예전의 짝사랑’을 만나거나, 회식을 하다가 회사나 거래처의 이성과 ‘눈이 맞는’ 일도 없습니다. 재택근무를 하여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퇴근하자마자 귀가하기 때문입니다. 집에 와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대화는 많아진 셈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로펌에 이혼을 상담하는 사례는 많았지만, 실제 이혼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통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2020년의 이혼율이 전년도에 비해 0.4%나 감소했습니다.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유럽통계청에 따르면 유럽연합 27개국의 2020년 이혼율은 전년에 비해 0.2% 감소했습니다. ‘홀로서기’를 할 때 감당해야 할 경제력이 부담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합니다. 중국에서는 2021년 이혼율이 전년 대비 43%나 감소했는데, 코로나19 봉쇄 조치 때문에 이혼신청만 해놓고 해당 관청을 방문해 나머지 행정처리를 하지 못해 생긴 ‘웃픈’ 일이라고 합니다. 팬데믹은 오히려 가족을 결속시켰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가족주의는 여전히 공고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22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머니러시(Money Rush)를 선정했습니다. 코로나19로 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자영업자가 눈물을 삼켰고, 일부는 생업을 접기도 했습니다. 더는 회사나 국가가 생존을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습니다. 2021년에 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가 ‘겸직허가’라고 합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N잡을 통해 수입을 늘려 위기가 왔을 때를 대비하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재택근무와 맞물려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머니러시’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노사회’도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노(nano)’란 10억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로, 매우 작다는 뜻입니다. 더는 공동체 위주의 사회가 중시되지 않으며, 개인은 더 미세한 존재로 분해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워라밸’이나 ‘소확행’처럼 개인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트렌드는 있었지만,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나노사회가 더 가속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향은 관성의 법칙처럼 코로나19가 잠잠해져도 멈추지 않을 전망입니다. 사람들의 기호나 소비 행태는 더욱 세분화되었고, 사람들은 SNS의 해시태그를 통해 취향과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편승하여 ‘집단주의’보다는 ‘가족주의’가 여전히 힘을 얻을 것입니다. 팬데믹만 아니었다면 바깥에서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을 사람들도 강제적으로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팬데믹으로 인해 냉혹해진 현실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을 실감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뭐래도 집보다 나은 곳, 집보다 즐거운 곳은 없기 때문입니다.
# 구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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