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essay

2018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에서는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6명이 마치 실제 가족처럼 모여 산다. 영화에서는 서로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아들, 딸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매일 때리기만 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 나온 꼬마 아이는 ‘가짜지만 진짜 가족’ 안에 들어와 지옥 같은 삶에서 벗어나 웃음을 되찾았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구승준_번역가·칼럼니스트

이와 관련된 논의가 우리나라에서도 2000년 초반부터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생활 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다.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함께 살며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을 보호하자는 취지다. 동거인에 대한 공동재산권을 비롯해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대상, 의료결정권(수술동의서, 퇴원수속 등)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프랑스, 덴마크 등에서 이미 유사한 제도를 도입했으며, 다른 많은 국가에서도 비혼출산을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가족의 전통적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지금은 피가 물보다 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체면을 중시하고 유교적 관습이 뿌리내린 과거에는 몇 년에 한 번씩 보는 이름도 모르는 친척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우선이고 다른 의미로 ‘진짜 가족’이다.

때로는 그 가족이 인간이 아닐 때도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이미 내가 키우는 동물은 ‘애완동물(pet)’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 같은 존재다. 내가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펫팸(pet family)이다. 이전에는 애완동물이라는 말이 쓰였지만 지금은 반려동물이라 부른다. 이 말은 1983년 10월, 동물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에서 ‘함께 지내는 동물은 더는 인간의 장난감이 아니라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존재로서 더불어 살아가는 반려동물(companionanimal)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데서 비롯되었다.

인간이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다. 인간이 숨을 쉬지 못하면 산소 부족으로 죽고, 밥을 먹지 못하면 영양부족으로 죽듯이 감정을 나누지 못하면 외로움에 말라 죽는다. 셀 수 없이 많은 통계자료에서 사랑하는 동물과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도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몸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한다. 인간은 다른 인간을 배신하거나 실망을 줄 수 있지만, 동물은 변함없이 인간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직장에서 상사에게 심한 질책을 듣고 풀이 죽어 집에 왔을 때도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핥아주면 생기를 되찾는다.

개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

2021년 KB금융지주가 발표한 <2021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반려동물을 기르는 ‘반려가구’는 604만 가구로 한국 전체 가구의 29.7%를 차지하며, 반려인은 1,448만 명으로 한국인 4명 중 1명 이상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반려동물 중에서는 개가 압도적으로 많아 전체 반려가구 중 무려 80.7%를 차지했다. 고양이가 25.7%로 뒤를 이었다. 한국 반려견 양육가구가 선호하는 견종은 몰티즈가 23.7%로 가장 많았고 이어 푸들(19.0%), 포메라니안(11.0%) 순이었다. 그 외 믹스견(10.7%), 치와와(10.1%), 시추(8.2%) 등이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선호하는 반려견 이름은 ‘코코’, ‘보리’, ‘초코’ 순이었다. 반려묘 양육가구가 선호하는 묘종은 코리안숏헤어가 45.2%로 가장 많았고 러시안블루(19.0%), 페르시안(18.7%)순이었다.

개가 반려동물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1950년대 러시아의 드미트르 벨라예프라는 과학자는 야생늑대를 길들이는 실험을 했다. 인간과 친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늑대들로만 교배를 진행했는데, 25년이 지난 교배 40세대가 되자 꼬리를 흔들고, 인간의 품으로 파고들거나 얼굴을 핥고, 관심을 구하듯 낑낑거리며,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는 등의 특성을 보였다. 개는 태생부터 ‘인간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며 이를 14,000년 넘게 유전인자로 전해왔으니 많은 인간이 반려 대상으로 개를 선택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한편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은 ‘집사’를 자처하며 그 매력을 예찬한다. 고양이는 개처럼 달려와서 얼굴을 핥지는 않지만, 자신의 영역을 지키면서도 인간과 독특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깔끔하기 때문에 따로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대소변을 가리고, 어느 정도는 혼자서도 잘 지내기 때문에 1인가구가 선호하는 편이다.

소수지만 이색 반려동물도 길러

숫자가 많지는 않지만 개와 고양이 다음으로 인기 있는 반려동물은 물고기다. 특히 구피나 플래티 같은 열대 어종이 인기가 높다. 색깔이 다양하고 지느러미가 화려하여 부드럽게 헤엄치는 모습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된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새가 인기 있지만, 아파트가 많은 한국에서는 오히려 파충류가 인기이다. 대표적인 반려동물은 거북이다. 주위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이나 도마뱀도 인기 있는 반려동물이다. 뱀을 기르는 사람도 제법 있다.

이색 반려동물도 있다.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나올 법한 프레리독이나 미어캣을 기르는 사람들이 있고 곤충도 반려동물로 떠오르고 있다.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달팽이는 물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부감을 가지는 타란툴라, 전갈, 지네, 쥐며느리 등을 기르는 사람도 있다.

최근에는 펫테크(Pet-tech)를 활용하기도 한다. 반려동물(Pet)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반려동물을 돌보는 데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에 첨단기술을 적용한 기기를 말한다. 반려동물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돌보기 위해 펫테크 기기를 이용하는 반려가구는 전체 반려가구의 64.1%를 차지했다. 가장 많이 이용하는 펫테크 기기는 자동 급식기와 자동급수기(39.4%), 모니터링을 위한 홈 CCTV와 카메라(30.3%), 반려동물 전용 자동 장난감(26.1%) 순이었다.

반려동물의 어두운 면

한편 반려동물을 기르는 데는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4년부터 반려동물등록 의무화가 시행되어,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1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실제 등록 건수는 40%에 불과하다. 현재는 반려견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등록률이 낮아 유기견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반려동물을 버려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인을 처벌하기 어렵다. 반려견을 키우는 집마다 방문해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과태료를 매기기도 어렵다. 사생활침해 우려도 있지만 그걸 할 수 있는 인력도 없다.

반려동물 가구가 증가하면서 생기는 소음이나 악취 등의 문제로 이웃갈등도 늘고 있다. 심지어는 ‘층견(犬)소음’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사회적인 문제가 되어 서로 고소를 하거나 보복범죄를 저지르는 일도 벌어진다. 맹견이 소형견이나 사람을 물어 중상을 입히거나 죽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현행 동물보호법을 위반해도 처벌이 미미하다.

올해 9월 농림축산부는 반려동물보유세 도입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내년에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관련 법의 엄정한 집행, 의료비 지원 등 동물복지를 위해서는 재원 마련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여러 선진국에서는 이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에는 ‘강아지세’가 있는데 지자체마다 세율이 다르다. 베를린의 경우 개 한 마리당 연간 120유로(약 16만 5,000원)을 내야 하며, 한 마리를 더 키우려면 추가로 180유로를 내야 한다.

‘식집사’, ‘식멍’, ‘플랜테리어’가 뜬다

반려식물에 대한 관심도 올라가고 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반려식물을 키우는 일이 늘었다. 예전에는 장식이나 기능적인 용도로 식물을 키웠지만, 지금은 함께 사는 삶의 동반자에 가깝다. 눈요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식물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인데, 이런 이유로 고양이에게 붙이던 ‘집사’하는 말을 식물양육자에게도 적용해 ‘식집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물 키우기는 갑자기 등장한 트렌드는 아니지만, 식물을 키우는 행위를 바라보는 대중의 심리가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반려식물은 반려동물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이를테면 반려식물이 길 가던 어린아이를 물어 중상을 입히거나 소음 때문에 이웃 간에 분쟁을 유발할 가능성은 없다. 직장을 다니는 싱글족이라면 반려동물을 혼자 방치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는데, 식물은 갑자기 집을 나가거나 없어지지도 않고 언제나 나를 반겨준다. 반려식물을 멍하게 바라보는 ‘식멍’은 스트레소 해소에 좋다. 미세먼지나 바이러스로 인해 위생의 중요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식물은 천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해준다. 반려동물에 비해 비용 부담도 적은 편이다.

최근 뜨고 있는 인테리어 트렌드로 플랜테리어가 꼽히기도 한다. 이는 ‘식물(plant)’과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다. 여행이나 출장 등 부득이하게 집을 비울 때 반려동물을 맡기는 것처럼 식물을 맡길 수 있는 식물호텔도 등장했다. 사정상 식물을 못 키우게 됐을 때 다른 고객에게 입양하는 서비스나 유기된 반려식물을 관리해 재분양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교원그룹과 LG전자는 식물재배기 라인업을 확대하여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씨앗키트를 넣고 물과 배양액만 공급하면 LED 조명이 광합성에 필요한 빛의 양과 세기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급수와 물 온도도 적절하게 관리해준다. 모바일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식물의 생장상태를 확인할 수도 있다. 균형을 잡으며 적절하게 빛과 물을 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이든 반려식물이든 방치하거나 애정을 과하게 주면 결과가 좋지 않다. 예를 들면 반려견을 너무 응석받이로 키울 수도 있고, 관심을 주지 않아 우울증에 걸리게 할 수도 있다. 식물은 너무 잘 키우려는 욕심에 물을 많이 주어 뿌리를 썩게 할 수도 있고, 물 주는 때를 놓쳐 말라 죽게 할 수도 있다. 관심은 가지되 과욕을 자제하고 계속 사랑으로 지켜보아야 한다. 계속 사랑을 주거나 방치하는 것보다 어려운 경지다. 어느 시인이 ‘오래 보아야 아름답다’고 말한 까닭은 그만큼 오래 보기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주면 늘 사랑으로 돌아온다. 식물이든, 사람이든, 다른 동물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 구승준

기자 생활을 하다 <M25>, <필름2.0>, <이코노믹 리뷰> 등 여러 주간지 편집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번역도 하고 칼럼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