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은 시각보다 빠르다. 인간의 뇌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할 때 초당 15~25번의 변화만 인식할 수 있지만, 청각적 정보는 초당 200회 이상의 변화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소리는 5ms(1000분의 1초)면 뇌의 청각피질에 도달하지만 시각의 경우에는 30~40ms가 돼야 뇌에 전달된다.
게다가 시각은 빛이 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일치시켜야 제 기능을 하는 제약이 있지만, 움직이지 않고도 사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은 그런 제약이 없다.
글 구승준 번역가 · 칼럼니스트 / 사진 이덕환
청각은 시각보다 빠르다. 인간의 뇌는 시각적 정보를 처리할 때 초당 15~25번의 변화만 인식할 수 있지만, 청각적 정보는 초당 200회 이상의 변화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소리는 5ms(1000분의 1초)면 뇌의 청각피질에 도달하지만 시각의 경우에는 30~40ms가 돼야 뇌에 전달된다.
게다가 시각은 빛이 오는 방향으로 시선을 일치시켜야 제 기능을 하는 제약이 있지만, 움직이지 않고도 사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각은 그런 제약이 없다.
글 구승준 번역가 · 칼럼니스트 / 사진 이덕환
귀는 눈보다 빠르다
인간의 청각이 발달한 이유는 진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진화 전 단계에서 아직 물에 있을 때는 소리가 아니라 진동으로 주위 상황을 파악했다. 물고기는 옆줄로 물의 진동을 감지한다. 물고기가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은 뭍 위로 올라와 파충류로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독일 베를린 자연사박물관 연구팀은 지구에서 우세했던 파충류인 에우파르케리아라를 연구한 결과, 이것이 이 시기의 다른 동물보다 달팽이관과 반고리관이 길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소리를 더 잘 듣고, 균형을 더 잘 잡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파충류는 더 민첩하게 먹이활동을 하고 포식자로부터 효과적으로 도피할 수 있었던 덕분에 1억 5천만 년 이상 지구를 호령했던 ‘지배파충류’의 조상격으로서 자리매김했다.
<사이언스>지에 실린 로이 마오르와 케이트 존스 연구팀의 논문에 따르면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을 때 포유류는 야행성이었고, 오감이 극도로 발달된 상태였다. 아주 작은 소리를 식별하고 밤에도 훤하게 볼 수 있었으며, 냄새로 포식자나 먹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러나 공룡이 멸종하고 낮에도 활동할 수 있게 되어 삶의 패턴이 주행성으로 바뀌게 되자 이런 감각이 퇴화되었다.
유인원으로 진화하자 넓은 주파수 범위를 듣는 대신, 좀 더 복잡한 신호를 듣고 해석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
오클랜드대학교 심리학자 마이클 코벌리스에 따르면 망을 보던 유인원들이 내는 소리가 수백만 년 동안 진화를 거쳐 음성언어로까지 발달했다고 한다. 사회 군집 생활이 더 정교해지자 말을 하는 발화기관, 소리를 듣는 청각기관,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뇌 또한 복합적으로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복잡다단한 진화 끝에 인간의 귀는 인간의 음성을 가장 잘 듣도록 되었다.
듣는 것은 균형잡는 일
귀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신비한 기능이 있다. 귀의 깊숙한 곳 내이의 ‘반고리관’에는 림프액이 가득 차 있는데, 이 액체의 흔들림으로 우리 몸의 평형을 감지한다. 어릴 적 술래잡기를 할 때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며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고 나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땅이 도는 듯한 체험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몸은 멈추었지만 내이의 림프액이 아직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진화의 산물이건 조물주의 작품이건, 균형을 잡는 감각이 귀에 들어 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인간관계의 균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입은 하나지만 귀가 두 개인 것은 상징하는 바가 있다. 달변가를 말만 잘하는 사람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 인간과의 소통에서는 대화를 잘 듣는 사람이 오히려 달변가로 인식되곤 한다.
센트럴플로리다대학교 해리 웨거 연구진은 ‘초기 상호작용에서 능동적 청취의 상대적 효과’라는 보고서에서 115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대화에서 실험자들은 적극적인 경청자세를 지닌 실험자들과 나눈 대화에 더 만족했으며 이것이 더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이밖에도 셀수 없는 연구에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주거나, 화자가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고 밝혔다.
마음을 열어야 비로소 들린다
미국의 방송인 래리 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상대도 당신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논어》 위령공편에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공자에게 평생 실천하며 살아야 할 말 한마디를 청하자 공자는 ‘남의 처지에서 남을 동정한다’는 뜻의 서(恕)자를 말했다. 덧붙여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말라”고 했다. 또한 성경에서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했다. 진정으로 상대방 말을 듣기를 원한다면 상대 입장에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 듣는 법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마땅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